니쿠쇼르 단, 대선 재선거서 ‘극우’ 시미온 제쳐
EU, 러시아 안보 위협 맞서 결속력 강화될 듯
젤렌스키 “역사적인 승리…신뢰할 만한 파트너”

루마니아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에서 유럽연합(EU)에 친화적인 니쿠쇼르 단 부쿠레슈티 시장(55·사진)이 민족주의 극우 성향 후보에 역전승을 거뒀다. 반트럼프 정서와 반러시아 정서가 단 시장의 승리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AP·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친유럽 성향의 단 시장은 18일(현지시간) 대선 결선투표에서 개표율 99% 기준으로 54.1%를 얻어 45.9%에 그친 극우 민족주의 성향의 제1야당 결속동맹(AUR) 대표 제오르제 시미온 후보를 8.2%포인트 차로 제치고 승리했다.

승리의 상징 된 EU 깃발 루마니아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 18일(현지시간) 부쿠레슈티에서 니쿠쇼르 단 후보 지지자들이 대형 유럽연합(EU) 깃발을 들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4일 1차 투표에서 시미온 후보는 41%로 단 당선인(21%)의 두 배 가까이 득표해 1위를 차지했다. 시미온 후보의 당선이 유력해지자 극우 세력을 저지하려는 유권자들이 결집하면서 결선투표 투표율(64%)은 2000년 대선 1차 투표 이후 2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공산주의 몰락 이후 루마니아에서 가장 중요한 선거’로 불린 이번 선거에 온 유럽의 시선이 쏠렸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 강화와 유럽 통합을 주장하는 단 당선인과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지원 중단, EU 회의론을 펼친 시미온 후보가 맞붙었기 때문이다. 단 당선인은 이번 대선을 “서방을 지지하는 루마니아와 서방을 반대하는 루마니아의 대결”로 규정하기도 했다.
수학자 출신으로 부동산 불법 개발에 반대하는 시민운동으로 입지를 다져온 단 당선인은 무소속으로 출마해 반부패, 친유럽 노선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 EU를 지지하고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것은 러시아의 위협에 맞서 루마니아의 안보를 지키는 데 필수적이라고 주장해왔다.
시미온 후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구호인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내세우며 루마니아의 ‘마가 대통령’이 되겠다고 공언해왔다. 시미온 후보는 러시아와 연계됐다는 의혹을 꾸준히 받기도 했다.
EU는 시미온 후보가 승리할 경우 루마니아가 헝가리·슬로바키아와 같은 친러 국가들 편에 서면서 러시아에 맞선 안보 동맹이 약화될 것을 우려해왔다. 루마니아에는 나토 공군기지와 미국 탄도미사일 방어시스템의 일부가 배치돼 있다.
단 당선인의 극적 역전승은 유럽 내 반트럼프 정서에 힘입은 것으로 보인다. 유라시아그룹의 유럽 담당 상무이사 무즈타바 라흐만은 “트럼프가 유럽 선거에 미친 긍정적 효과를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로, 정치 및 정책 방향이 ‘마가’와 유사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데 대한 우려가 유권자들을 움직였다”고 로이터통신에 논평했다. 중도 우파 ‘루마니아 살리기 연합’ 소속 상원의원 이리네우 다라우는 “마가가 오늘 패배했다. 러시아도 마찬가지로 졌다”고 워싱턴포스트에 말했다. 앞서 캐나다와 호주 총선에서도 친트럼프 성향의 보수 정당이 패배했다.
단 당선인의 승리로 EU는 러시아 안보 위협에 맞서 결속력을 강화할 수 있게 됐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역사적인 승리”라며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루마니아가 신뢰할 만한 파트너가 된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루마니아 국민이 강력한 유럽 안에서 개방된 루마니아의 번영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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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대선은 러시아의 선거 개입 의혹이 불거지는 등 정치적 격변 속에 치러졌다. 지난해 11월 대선이 치러졌지만 헌법재판소가 선거법 위반과 러시아 선거 개입 의혹을 이유로 선거를 무효로 하고 재선거를 명령했다. 당시 1위였던 극우 컬린 제오르제스쿠 후보가 출마 자격을 박탈당하자 시미온 후보가 극우 지지층을 흡수하며 급부상했다.
한편 이날 폴란드에서 치러진 대선 1차 투표, 포르투갈에서 치러진 조기 총선에서도 친EU 성향의 중도우파가 우세를 보였다. 폴란드 대선 1차 투표에선 친EU 성향 집권 여당 시민플랫폼(PO)의 라파우 트샤스코프스키 후보가 30.7%를 득표해 근소한 차이로 1위를 차지했다. 득표율이 과반에 못 미쳐 내달 결선투표가 치러진다. 포르투갈 조기 총선에선 중도우파 민주동맹이 의회 230석 중 89석을 확보해 1위를 차지했지만, 과반 최소 의석 116석에는 미치지 못했다. 극우 포퓰리즘 정당 셰가가 58석을 확보하며 급부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