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해외송달 2개월 내 궐석재판은 절차 위반”

서울 서초구 대법원. 한수빈 기자
국내에서 보이스피싱 조직의 현금 수거책으로 활동한 외국인이 징역형을 선고받았으나 대법원이 이를 파기했다. 재판부가 외국으로 피고인 소환장을 보낸 뒤 ‘공시송달 효력’을 지키지 않고 피고인 출석 없이 판결을 선고한 점이 문제가 됐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절도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1년 선고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지난달 24일 파기하고 사건을 수원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우즈베키스탄 국적 A씨는 2023년 11월 국내 한 보이스피싱 범죄 조직으로부터 조직원 제안을 받았다. A씨는 피해자들이 집이나 우체통 등에 현금을 두면 이를 조직에 전달하는 ‘수거책’을 맡았다. A씨는 경찰을 사칭해 “새로 카드가 발급됐는데 발급사실이 없다면 카드발급을 취소해 주겠다”고 말하는 수법 등을 썼다. A씨는 약 15일 동안 총 4차례에 걸쳐 피해자 4명으로부터 각각 현금 700만~1972만원을 가로챘다.
1심은 “A씨가 회사 업무의 일환으로 인식하고 있었을 뿐, 자신의 행위가 보이스피싱 범행의 일환이라는 것 인지하지 못했을 수 있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2심은 징역 1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비록 A씨가 보이스피싱 범행의 내용과 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인식하지는 못했더라도 자신이 하는 현금수거행위가 보이스피싱 범행의 한 과정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적어도 미필적으로나마 인식했다”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의심스러운 사정들을 외면한 채 이 사건 범행에 가담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원심판결을 인정하지 않았다. 항소심 재판부가 ‘공시송달 효력’을 지키지 않은 점이 절차상 문제가 됐다. 형사소송법에 따라 피고인이 재판에 출석하지 않으면 재판부는 다시 기일을 정해야 한다. 피고인이 소환장을 받고도 정당한 이유 없이 또 출석하지 않으면 재판부는 피고인 진술 없이 판결할 수 있다. 피고인이 외국에 있을 때는 공시송달을 할 수 있고, 공시송달 효력은 실시일로부터 2개월이 지나야 효력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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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 항소심 재판부는 지난해 11월18일 A씨가 공판에 출석하지 않자 소환장을 공시송달했다. 2차 공판은 약 17일 뒤인 12월4일에 열렸고, A씨는 이때도 출석하지 않자 곧바로 A씨 진술 없이 남은 절차를 진행했다.
대법원은 “A씨가 공시송달에 의한 소환을 받고서도 2회 연속 불출석했다고 인정하기 위해서는, 첫 공시송달을 한 지난해 11월18일로부터 2개월의 기간이 지난 1월19일 이후에 진행된 2회의 공판기일에 연속해 불출석했어야만 한다”고 했다. 이어 “원심은 첫 공시송달일로부터 2개월의 기간이 지나기 전에 열린 공판기일에 A씨가 불출석하자 A씨의 진술 없이 바로 공판을 진행하고 A씨가 출석하지 않은 기일에 판결을 선고했다”며 “이러한 원심의 조치는 피고인의 출석권을 침해한 것으로서 소송절차가 법령에 위배돼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