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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발레’의 레전드, 유리 그리고로비치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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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볼쇼이 극장 예술감독을 지낸 '20세기 발레의 거장' 유리 그리고로비치가 19일 타계했다.

그는 1995년 무용수 계약 문제로 볼쇼이 극장 경영진과 갈등을 빚은 끝에 사임했다.

단원들의 존경을 받았던 그의 사임은 이후 볼쇼이 극장 최초의 무용수 파업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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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발레’의 레전드, 유리 그리고로비치 별세

유리 그리고로비치. 로이터연합뉴스

유리 그리고로비치. 로이터연합뉴스

러시아 볼쇼이 극장 예술감독을 지낸 ‘20세기 발레의 거장’ 유리 그리고로비치가 19일(현지시간) 타계했다. 향년 98세.

타스 통신 등에 따르면 볼쇼이 극장은 이날 성명을 통해 “20세기 후반 발레계의 핵심 인물인 유리 그리고로비치가 별세했다”며 “그의 기억을 소중히 간직하고, 그가 남긴 귀중한 유산을 지켜나가겠다”고 밝혔다. 무용수로서 고인이 활약한 마린스키 극장도 “한 시대가 막을 내렸다”며 애도의 뜻을 전했다.

1927년 당시 소련의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난 그리고로비치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발레학교를 졸업한 뒤 키로프 발레단(현 마린스키 발레단)에 입단해 발레리노의 커리어를 시작했다.

1957년 첫 안무작인 <석화>를 발표하며 주목받았고, 1961년 <사랑의 전설>로 성공을 거둔 뒤 1962년 마린스키 극장의 발레 마스터가 됐다. ‘스타 안무가’로 본격적인 각광을 받은 것은 1964년 볼쇼이 극장 수석 안무가에 임명되면서부터였다. 이후 1995년까지 31년 동안 볼쇼이에서 <호두까기 인형>(1966)을 비롯해 <이반 뇌제>(1975), <앙가라>(1976) 등 수많은 발레 명작을 양산했다.

그가 재직 중일 때 볼쇼이 발레단은 90회 이상의 해외 순회공연을 하는 등 황금기를 구가했다. 그는 1995년 무용수 계약 문제로 볼쇼이 극장 경영진과 갈등을 빚은 끝에 사임했다. 단원들의 존경을 받았던 그의 사임은 이후 볼쇼이 극장 최초의 무용수 파업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1992년 ‘발레계의 아카데미상’으로 알려진 ‘브누아 드 라 당스’ 상의 창설을 주도한 이도 그리고로비치였다.

문화·예술계에서의 공로를 인정받아 1973년 소련 인민예술가, 1986년 사회주의 노동영웅 칭호를 받았다. 2017년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으로부터 최고 권위의 ‘국가상’을 받았다.

국내 발레계에 끼친 영향도 지대하다. 국립발레단의 레퍼토리 <호두까기 인형>(2000)과 <백조의 호수>(2001), <스파르타쿠스>(2001) 등은 그리고로비치가 직접 안무를 손보아가며 지도한 작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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