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윤지호 의 투자, 함께 고민하시죠]두터움과 수읽기로…한국 증시의 ‘승부’를 기대하라



완독

경향신문

공유하기

닫기

보기 설정

닫기

글자 크기

컬러 모드

컬러 모드

닫기

본문 요약

닫기

한국 증시를 바로 보는 관점이 바뀌어야 한다.

무엇보다 미국 스스로 자신의 지위를 내려놓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양보하지 않았던 미국의 패권적 지위를 트럼프 행정부는 스스로 내려놓고 있다.

인공지능 기술로 자동 요약된 내용입니다. 전체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본문과 함께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제공 = 경향신문&NAVER MEDIA API)

내 뉴스플리에 저장

닫기

[윤지호 의 투자, 함께 고민하시죠]두터움과 수읽기로…한국 증시의 ‘승부’를 기대하라

바둑 한 판은 돌을 가리고 난 뒤, 인사로 시작한다. 그리고 첫 점을 놓는다. 기사별 포석은 다르지만, 바둑이 초반을 지나 중반전에 다다르면 초반의 포석이 혈로를 막기도 하고, 패싸움의 승패를 결정하기도 한다. 영화 <승부>를 보니 오래전 어떤 날 작은 아이의 모습으로 바둑을 두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다니던 초등학교는 바둑교육을 강조했고, 방과 후 수업에 불과했던 바둑은 당시 부모들의 극성 속에 꽤 유행했다. 인내심도 기르고, 머리도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바람은 꼬맹이들을 바둑학원으로 이끌었다. 당시 슈퍼스타는 조훈현이다. 모든 타이틀을 석권하기도 했지만, 젊은 시절의 그는 빠른 창이었다. 제비라는 별명에서 드러나듯이 행마의 탁월함과 유연한 변신 등 범접하기 힘든 신화였다.

잊고 지내던 바둑을 소환한 건, 성인이 된 뒤였다. 바둑을 좋아하는 직장 상사가 있어 슬그머니 바둑에 다시 눈길을 두게 되었다. 하지만 예전만큼 흥미롭지 않았다. 더욱이 당시 최전성기를 맞이한 이창호는 빠른 행마보다 두터움과 수읽기로 승부를 내는 뚝심 있는 기사였다. 한 수 한 수가 허투루 쓰이지 않는 계산바둑의 정수였지만, 화려하지 않았다.

투자의 방법도 바둑과 비슷하다. 전통적인 투자 방법이 생기기도 하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하지만 감각적인 행마로 공격적인 투자에 성공한 이보다는 가치를 두텁게 하며 차분히 자신의 시간을 쌓아간 이들이 승자가 되어왔다.

물론 바둑판의 형세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것처럼, 지키기에 능한 바둑은 상대방의 절묘한 한 수로 판세가 흔들리기도 한다. 그럴수록 더 정교한 수읽기로 수세에서 벗어나야 한다. 미국 신용등급이 강등되고, 금리와 환율이 요동치는 국면에서 투자자가 집중해야 할 기준도 다르지 않다. 단지, 좋은 기업이 좋은 가격에 와 있는가를 가늠할 시기다.

4월9일을 반환점으로 올라온 코스피 지수를 부담스럽게 바라보는 이가 많다. 한국 증시는 장기투자자로 남기보다 짧은 매매로 대응해야 한다는 조언이 넘쳐난다. 지금까지 이러한 조언은 일정 부분 적절했다. 하지만 판세가 달라지고 있다. 한국 증시를 바로 보는 관점이 바뀌어야 한다. 무엇보다 미국 스스로 자신의 지위를 내려놓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양보하지 않았던 미국의 패권적 지위를 트럼프 행정부는 스스로 내려놓고 있다. 미국은 이민자의 활력으로 성장한 나라다. 전 세계의 똑똑한 인재들이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면 미국으로 가 혁신을 이루고, 미국을 강하게 만들었다. AI 혁신의 압도적 우위에 힘입어 2023~2024년 미국 성장주는 밸류에이션 부담을 극복하고 전진했다. 하지만 이제는 부담스럽다. 중국의 딥시크 충격이 시작이었고, 우수인력 유입을 제한하는 이민자 정책은 미국의 혁신 성장에 대한 의구심을 키우고 있다.

더 큰 실수는 미국의 강점을 스스로 부정하는 정책이다. 미국의 힘은 달러에서 출발한다. 차용증에 불과한 달러를 세계 어느 나라이든지 소유하길 원했다. 가장 큰 소비시장인 미국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미국에서 번 돈으로 달러자산인 국채를 사야 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무역에서 흑자를 보지 말라고 한다. 당연히 미 국채 수요는 줄어들 것이다. 순이자지출로만 재정적자를 감당하는 미국이 국채수요마저 줄어든다면, 과연 달러의 지위는 유지될 수 있을까? 이미 달러 외 자산으로 포트폴리오 다변화는 진행 중이고, 한국의 원화 자산도 그 과정에서 선택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외국인은 다시 한국 주식을 늘려갈 시기가 됐다.

미국의 정책변화보다 더 근본적인 모멘텀은 한국 내부에 있다. 한국 증시의 저평가는 구조적이다. 법은 주주가치보다 오너들의 입장을 옹호하고, 그러다 보니 중복상장, 경영진의 주주 경시 등과 같은 일이 비일비재했다. 이익 대비 주가(PER)는 9배에 못 미치고, 자산 대비 주가(PBR)는 0.87배에 불과하다. 저평가 원인은 삼성전자, 현대차, 그리고 금융주 등에 있다. 한국 대표기업들은 실적개선이 가시화됐지만 주가에는 반영되지 않고 있다. 수급도 비우호적이다. 국내 투자자는 미국 주식 선호로 떠나고, 외국 투자자는 아직 한국 증시로 돌아오지 않았다.

6월 이후 한국에서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고, 3분기 중 미국의 부채한도 협상이 통과하면 불확실성은 완화된다. 주가는 앞서 이러한 변화를 반영해갈 것이다. 한국 대표기업들은 가치 대비 지나친 할인을 받고 있다.

멋진 승부는 정적 속에 탄생한다. 초읽기에 들어간 바둑판은 적막하다. 투자도 마찬가지다. 주변의 소음에 거리를 두어야 한다. 지나치게 음모적인 투자 제언은 피해야 한다. 들을 때는 그럴 듯하지만, 답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좋은 기업이 좋은 주가에 있을 때, 용기를 내야 한다. 용기는 위험을 인식하고 공포를 겪으면서도 행동하는 내면의 힘이다. 겁쟁이는 두려움을 견디거나 이기지 못해 마구잡이로 행동하지만, 용감한 사람은 두려움 속에서도 나아갈 방향을 선택한다.

‘좋은 기업을 나눠서 사라.’ 실패해도 망하지 않을 투자의 시기가 됐다. 한국 증시는 추가 하락이 있더라도 버티면서 들고 가도 되는 수준에 도달했다. 두텁게 쌓아가는 수읽기의 힘으로 버텨내자.

윤지호 경제평론가

윤지호 경제평론가

  • AD
  • AD
  • AD

연재 레터를 구독하시려면 뉴스레터 수신 동의가 필요합니다. 동의하시겠어요?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콘텐츠 서비스(연재, 이슈, 기자 신규 기사 알림 등)를 메일로 추천 및 안내 받을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아니오

레터 구독을 취소하시겠어요?

구독 취소하기
뉴스레터 수신 동의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안녕하세요.

연재 레터 등록을 위해 회원님의 이메일 주소 인증이 필요합니다.

회원가입시 등록한 이메일 주소입니다. 이메일 주소 변경은 마이페이지에서 가능합니다.
보기
이메일 주소는 회원님 본인의 이메일 주소를 입력합니다. 이메일 주소를 잘못 입력하신 경우, 인증번호가 포함된 메일이 발송되지 않습니다.
뉴스레터 수신 동의
닫기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로 인증메일을 발송했습니다. 아래 확인 버튼을 누르면 연재 레터 구독이 완료됩니다.

연재 레터 구독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닫기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