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 살의 모모요 할머니는 홀로 도쿄 여행을 떠나며 버킷리스트를 만들었다. 할머니의 버킷리스트에는 ‘호텔에서 혼자 자기’ ‘동물원에 가서 판다 보기’ ‘도쿄돔 견학하기’ ‘디즈니랜드에서 놀기’ 같은 소망들이 적혀 있었다. 고령에도 하나하나 버킷리스트를 실천하는 할머니의 이야기는 책 <모모요는 아직 아흔 살>에 소개됐고, 독자들은 ‘저 연세에 대단하다’ ‘나도 해봐야겠다’는 감탄과 함께 용기를 얻었다.
버킷리스트는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들을 적은 목록이다. ‘죽다’라는 뜻의 영어 관용구 ‘킥 더 버킷(kick the bucket)’에서 유래한 이 용어는 동명의 영화 <버킷리스트>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병실을 함께 쓰게 된 두 노인이 병원을 탈출해 스카이다이빙, 만리장성에서 오토바이 몰기, 타지마할 방문, 사파리 체험, 타투하기 등 젊어서 하지 못했던 일들을 실천한다. 특히 오랫동안 소원했던 가족과 화해하는 장면은 단순히 소망을 실천하는 것을 넘어 인생의 중요한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버킷리스트는 심리적으로 긍정적인 효과를 준다. 알렉산드라 프로인트 취리히대 교수의 2020년 미국심리학회지 논문에 따르면, 버킷리스트는 노년기에 접어든 사람들이 자기주도적으로 삶을 설계하고, 시간과 자원을 능동적으로 배분하며, 여가와 사회적 관계를 통해 정서적 만족감을 얻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노년기의 버킷리스트가 여가와 사회적 관계에 관한 항목이 많아 실천할수록 외로움은 줄고 삶의 질이 높아진다고 한다.
버킷리스트의 내용은 나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달라진다. 수업 시간에 대학생들에게 버킷리스트를 물어보면 세계 일주, 크루즈 여행, 유럽 배낭여행처럼 여행 중심의 항목이 많다. 서울시 50플러스재단이 50세 이상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재능기부, 유언장 작성, 외국어와 악기 배우기, 가족과 여행 가기, 제2의 직업 만들기 같은 항목이 상위에 올랐다.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팀이 미국 성인 3000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청년층은 번지점프·스카이다이빙 같은 모험적 활동을, 고령층은 가족이나 친구와의 소중한 시간을 더욱 가치 있게 여겼다.
하지만 버킷리스트를 만들고 실천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바쁜 일상과 경제적 부담 속에서 꿈을 꾸는 일조차 사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또한 오랫동안 생계 일과 책임에만 몰두하다 보면 정작 자신이 진심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게 된다. ‘언젠가 시간이 나면 하지’라고 미루지만, 막상 은퇴 후 시간이 나더라도 건강과 돈 때문에 꿈을 펼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버킷리스트는 거창해야 한다는 부담을 내려놓자. 삶의 마무리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엔딩노트>를 보면, 은퇴를 앞두고 위암 말기 진단을 받은 주인공이 삶을 정리하기 위해 ‘쑥스럽지만 아내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기’ ‘손녀들과 한 번 더 힘껏 놀기’ ‘소홀했던 가족과 행복한 여행 하기’ 등 소박하지만 간절한 바람을 실천한다. 얼마 남지 않은 삶에서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버킷리스트를 실천한다는 것은 그 내용이 거창하든 아니든 모두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노력이다.
아무리 작고 하찮게 여겨지는 일일지라도 버킷리스트로 만들어보자. 세계 일주와 같은 큰 도전도 좋지만, ‘손주에게 손편지 써보기’ ‘오래된 사진 다시 꺼내 보기’처럼 작은 일도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줄 것이다. 오래전 써두었던 일기를 다시 펼쳐보듯 인생을 돌아보자. 마음속 어딘가에 아직 꺼내지 않은 소망 하나쯤은 품고 있을지 모른다.
지금 이 순간을 더 의미 있게 살기 위한 ‘나의, 나에 의한, 나를 위한’ 버킷리스트를 만들어보자. ‘손주에게 손편지’, 생각만 해도 미소가 지어진다.

김기연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