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일 경남 김해시에서 한 시민이 대선 후보 포스터를 보고 있다. 문광호 기자
6·3 대선을 2주 앞둔 20일 인구 200만명에 가까운 ‘낙동강벨트’(서부산·경남 동부권) 민심이 심상치 않다. 매 선거 격전지로 분류됐지만 보수가 근소 우위였던 이 지역에서조차 윤석열 전 대통령이 선포한 12·3 불법계엄에 대한 여론은 싸늘하다. 탄핵 정국, 단일화 잡음에 국민의힘에 대한 시선도 곱지 않다. 지난 19일 역대 선거마다 격전지였던 낙동강벨트, 그 중에서도 초접전지였던 부산 강서구 명지동과 경남 김해 장유동을 찾아 대선 민심을 들어봤다.
낙동강벨트는 보수가 우세한 지역이지만 민주당 진영 대통령(노무현·문재인)을 배출하기도 한 선거의 바로미터다. 2022년 대선에서는 윤 전 대통령이 부산 강서구에서 53.50%를 득표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42.92%)를 10.58%포인트 앞섰다. 김해에서는 윤 전 대통령 49.33%, 이 후보 46.23%로 득표율 차가 3.1%포인트에 불과했다. 지난해 22대 총선에서는 부산 강서구에서 김도읍 국민의힘 의원이, 경남 김해갑·을에서 민홍철·김정호 민주당 의원이 각각 당선됐다.
낙동강벨트에서 만난 시민들은 불법계엄 선포, 탄핵심판 과정에서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에 느낀 실망감을 숨기지 않았다. 부산 명지시장에서 주차관리 일을 하는 곽병관씨(79)는 “이런 시절에 계엄이 어디 있나”라며 “이번엔 부산에서도 좀 다를 것이다. 박근혜 탄핵 때랑 달리 이번에는 완전히 이 사람(윤 전 대통령) 잘못 아닌가”라고 말했다. 그는 “나처럼 나이 먹은 사람들도 보수에서 진보로 지금 많이 넘어갔다”며 “하는 꼬라지(꼴)를 보니 도저히 안 되겠다”고 했다.
강서구 명지동에 20년 넘게 거주한 김정호씨(50)는 이재명 후보를 뽑을 생각이라며 “탄핵됐을 때 잘못했다고 수긍했으면 국민의힘도 민심은 잃지 않았을 낀(텐)데 끝까지 죄가 없다고 (윤 전 대통령을) 옹호하니 이미 부산 민심은 다 잃었다. 주변에서도 다 돌아섰다”고 말했다. 그는 “다음 국회의원 선거까지도 영향이 있을 것 같다”며 “(윤 전 대통령이) 뻔뻔하게 거짓말할 때 화가 났다. (군인들이 국회) 유리창 깨고 하는 걸 TV로 다 봤는데 재판 과정에서 고개 빳빳하게 들고···”라고 말했다.
김해에서도 정권 심판을 바라는 목소리가 컸다. 김해에서 과일가게를 운영하는 한 60대 남성은 “국민의힘 이야기는 꺼내지도 말라. 요새 국민의힘 얘기하면 욕 들어 먹는다”며 “윤석열이 나라를 망하게 만들어놨지 않나. 너무 밉다”고 말했다. 김해에 거주하는 한 40대 여성은 “이재명 후보가 내란세력 심판을 앞장서서 제대로 해줄 것 같다”며 “회사 동료들끼리 말은 못하지만 바른 후보를 선출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다”고 말했다.

19일 부산 강서구 명지신도시의 모습. 문광호 기자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에 대해서는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있었다. 김해에서 원예업을 하는 한 60대 여성은 “국민의힘 사람들을 믿을 수가 없다”며 “김문수씨는 그렇게 뭐 22번이나 그렇게 (한덕수 전 총리와) 단일화한다고 하고서 자기가 올라가니까 말을 뒤집었다”고 했다. 그는 또 “김 후보는 나이도 많고 옛날에 경기지사 할 때 소방관한테 ‘도지삽니다’ 그것도 안 좋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보수 우위 지역인 만큼 “그래도 국민의힘”이라고 말하는 시민들도 적지 않았다. 다만 시민들은 불법계엄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실망감, 대선 패배 전망 등을 이유로 지지 후보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기를 꺼렸다. 김 후보를 지지한다고 밝힌 시민들도 그 이유로 비전이나 능력에 대한 기대감보다 “이재명 후보가 싫어서”라고 말했다.
명지시장에서 지난 18일 열린 첫 TV토론 재방송을 보던 한 상인은 “투표하고 싶은 마음도 없는데 그래도 가서 찍어야 안 되겠나. 국민의힘 찍지 우리가 어딜 찍겠나”라며 “(대통령으로) 이재명이 자체가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김 후보가 좋아서는 아니라며 “매력이 없다”고 말했다. 명지시장의 다른 상인은 김 후보에 대해 “(국회에서) 다 일어나서 인사하라고 할 때도 자기 혼자만 안 일어나던데 그건 참 좋더라”라고 호평했다. 명지신도시에서 케이크 전문점을 운영하는 박효진씨(32)는 “(비상계엄은) 최악이었다. 주변에서 다들 미쳤다고 했다”면서도 “(이 후보는) 범죄자라 뽑기가 그렇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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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를 보수의 대안으로 생각하는 시민도 있었다. 부산 강서구에서 노인 일자리 모니터링을 하는 서연숙씨(63)는 “국민의힘이 개혁을 해야 하는데 다 옛날에 했던 분들을 쓰고 불러들인다. ‘꼰대’들이 많다”며 “기득권들이 똘똘 뭉쳐갖고 새로운 사람, 좀 똑똑한 사람이 들어오면 다 쳐내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김문수 후보도 다 밑에서 조정하는 것”이라며 “젊은 이준석이라도 (단일 후보로) 밀면 뭔가 (보수가) 조금 바뀔 것 같은데 (현실적으로) 그것도 쉽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싸늘한 민심 탓인지 낙동강벨트의 선거전은 차분한 분위기 속 치러지고 있었다. 부산과 김해에서 만난 다수의 시민들은 대선을 언급하자 얘기할 것이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국민의힘이 선거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었다. 김해에서 두부집을 운영하는 이재학씨(61)는 “이재명 (유세)차만 계속 돌아다닌다”며 “국민의힘은 눈 씻고 찾아볼래도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시민들이 차기 대통령에게 바라는 바는 경제 활성화였다. 부산 명지신도시에서 약사로 일하는 30세 여성은 “지방 경제가 좀 살아났으면 좋겠다”며 “다 서울로 가지 않나. 남아 있는 사람도 없고”라고 말했다. 부산에 거주하는 한 30대 남성은 “먹고 살기 바빠 정치에 관심이 없었다”며 “경제를 살리는 후보가 대통령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