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한 대선 레이스에 집중하다 보니 잠시 잊고 있었던 것 같다.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이 풀려나 활개 치며 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한데 매우 불편하다. 내란 혐의를 받는 부하들은 구속 수감된 채 재판을 받는데, 정작 우두머리는 차로 10분도 안 되는 거리에서 출퇴근하듯 오가며 법정에 선다. 파면된 지가 언젠데 아직도 대단한 영향력을 발휘한다고 착각한다. 등 떠밀려 탈당하면서도 일말의 반성이나 사과도 없다. 나라를 발칵 뒤집어놓고도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일처럼 개 끌고 산책하고, 영화 보러 다닌다. 울화가 치미는 것은 고스란히 시민의 몫이다.
우리는 지난 3년 동안 자기중심적이고 비상식적인 지도자의 통치를 견디며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배웠다. 그런 지도자가 다스리는 나라는 순식간에 망가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경험했다. 야권 인사와 비판자를 ‘반국가 세력’ 취급하고, 나라를 사조직처럼 운영한 대통령이 권력을 어떻게 휘둘렀는지 보여줬다. 툭하면 격노하고, 자기 뜻에 맞지 않으면 검경을 동원해 탈탈 털어 시민을 괴롭혔다. 공사 구분 없이 권력을 사유화하며 민주주의의 근간을 무너뜨렸다. 결국 윤석열 정권은 ‘12·3 내란’을 시도하다 파국을 맞았다. 이제 시민은 묻는다. 다음 대통령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
지도자가 헌법을 존중하고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것은 당연한 출발점이다. 무엇보다도 국민을 두려워할 줄 아는 사람이 돼야 한다. 그가 어떤 국정 철학을 가졌고, 어떻게 국민을 대하는가도 꼼꼼히 살펴야 한다. 아무 생각 없이 어퍼컷이나 날리면서 국민을 갈라치기하는 인물은 안 된다. 무능한 리더가 나라를 망치는 걸 지난 3년간 봐왔다.
화려한 언변이나 카리스마에 속지 말자. 실책을 인정하지 않는 인물에게 국정을 맡길 수는 없다. 그런 지도자는 공동체를 분열시킬 뿐이다. 남 탓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일국의 지도자는 결과에 책임져야 한다. 책 한 권 달랑 읽고 그 내용을 절대 진리인 것처럼 여겨 중요 정책에 무턱대고 적용하는 사람도 위험하다. ‘이벤트’와 ‘이미지’에 몰두해 공약을 남발하는 후보는 경계 대상이다. 여론을 무시한 일방통행식 정치는 시민들을 지치게 만든다. ‘카르텔 척결’을 외치며 예산을 무자비하게 삭감하고, 사회적 합의나 의견 수렴 없이 의대 정원을 2000명씩 늘리겠다는 ‘돌출 행정’의 폐해를 이미 목도하지 않았나.
경제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하고, 실현 불가능한 공약만 남발하는 인물 역시 곤란하다. 정책의 중요성도, 우선 순위도 파악하지 못하면서 번지르르하게 말만 앞세우는 사람은 뽑지 말자. 민생 파탄의 지름길이다. 토론이나 의견 수렴은 일체 생략하고 직진만 고집하는 지도자는 민심과 멀어질 수밖에 없다. 소통 없는 독주는 피로감만 안길 뿐이다.
‘표현의 자유’와 ‘언론 독립’을 어떻게 인식하는지도 중요하다. 자신의 추종 세력을 방송이나 언론단체에 꽂아넣고 입맛대로 좌지우지하려는 행태는 언론을 권력의 홍보 도구로 전락시키고,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한다. 그런 과거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언론은 권력의 ‘감시자’이지, ‘찬양자’가 아니다. 극우 유튜브에 심취해 정작 신문 한 줄 읽지 않는 지도자는 판단력과 균형 감각 모두 의심받아야 한다. 검증되지 않은 유튜버를 공공기관장이나 참모로 기용해서도 안 된다.
외교 또한 전략적 감각이 필요하다. 미국에 지나치게 의존하거나, 반대로 중국·러시아와의 관계를 무모하게 악화시키는 외교는 경제와 안보를 동시에 흔들게 된다. 남북관계를 냉전의 틀에서만 바라보는 인식도 위험하다. 외교는 이념이 아니라 국익의 문제다.
최악의 지도자는 오류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 고치거나 배우려는 의지도 없이 자신의 생각만 앞세우고,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사람에게 국정을 맡기면 재앙으로 치달을 수 있다.
유시민 작가는 <그의 운명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생각>에서 윤석열을 ‘도자기 박물관에 들어온 코끼리’에 비유했다. 코끼리는 의도치 않게 건드리는 도자기마다 깨뜨리고 만다. 그 파손은 고의가 아닌 ‘부수적인 피해’에 가깝다. 문제는 코끼리 자체라기보다 그런 존재를 도자기들 사이로 들여보낸 사람들이다. 다시 말해 코끼리가 박물관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았어야 할 책임은 결국 시민들에게 있다는 얘기다. 시민들은 앞으로 어떤 나라를 만들고 싶은가를 먼저 판단하고, 그 질문에 가장 진지하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해야 한다. 대선이 2주도 채 남지 않았다.
조홍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