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유력 대선 후보의 공약으로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다시 점화되고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지역거점국립대학교(거점대), 예컨대 부산대·경북대·전남대 등 9개 국립대에 대해 서울대에 준하는 재정 지원을 보장하고, 그를 통해 대학 입시에서 서울로 쏠리는 인재 유출을 완화하겠다는 구상이다.
물론 그 효과는 단순히 입시 경쟁 분산에만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핵심적 효과는 이 대학들이 글로벌 연구중심대학의 반열로 승격할 수 있는 기반을 확보할 수 있고, 이들을 허브로 하는 지역별 교육 생태계의 독자적 진화를 촉발하는 것이다. 혹여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서울대·거점대 공동학위제’와 동일시하는 경우도 있지만, 공동학위는 현실적이지도 않을뿐더러 오히려 강줄기를 서울대로 역류하도록 하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 그보다는 거점대들이 지역 내 고등학교-사립대-일터의 탈중앙적 네트워크를 포함한 자생적 교육 생태계를 선도하는 쪽으로 기능해야 한다. 또한 입시에서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거점대들이 해당 지역의 인재들을 강하게 빨아들일 수 있는 흡인력을 가져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지역인재에 유리한 입시전형, 지역 고교·거점대 간 협약, 의대·약대 등을 포함한 폭넓은 무전공 확대, 지역 사립대와의 준공영적 연대 및 편입 보장, 고교학점제를 통한 내신 위주 입시전형 등이 허용돼야 한다.
사실, 교육비 투자액과 세계 대학 랭킹 사이에는 나름의 정적 상관관계가 있다. 글로벌 대학 랭킹인 QS 랭킹을 활용해보면, 학생 1인당 교육비가 5000만원이 좀 넘는 서울대가 31위인 반면, 대개 3000만원대 중후반인 고려대와 연세대는 100위권 안에 포함돼 있다. 2000만원대 초반인 부산대나 경북대 등은 500위권에 머문다. 참고로 교육비 투자에서 서울대의 두 배가량 되는 싱가포르국립대는 8위이다. 숫자로만 보면 교육비 차이가 대학 경쟁력 차이로 나타난다. 이를 위해 필요한 재정은 전체 한국 국내총생산(GDP) 대비 0.08% 혹은 정부 교육예산의 2% 정도인데, 이는 입시 과잉경쟁을 완화하고 한국 대학연구력에 승수효과를 부여할 수 있는 정책이라는 점에서 그리 무리한 투자는 아니다.
하지만 여기에 몇 가지 단서가 붙어야 한다. 우선 현재의 거점대들은 모두 글로벌 연구중심 종합대학교 모형을 따르지만, 이것은 매우 비싼 ‘돈 먹는 하마’이며 유지하는 데 비용이 많이 든다. 미래 한국 고등교육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서라도 현재의 거점대 구조 위에 무조건 재정을 때려 붓기보다는 지역마다 독창적인 ‘새로운 연구중심 고등교육 모형’을 제안하고 실험하는 단계를 거치는 순차적 전환이 필요하다.
둘째, 현재의 거점대 교육모형이 인공지능 시대를 대비할 수 있는 적합한 형태인지 비판적으로 검토돼야 한다. 강의 중심 교실 수업이 대부분인 현재의 커리큘럼과 교육방식은 완전히 재검토돼야 한다. 인공지능 시대에 맞는 인간지능과 인공지능의 협력체계 및 새로운 역량 리스트를 구축하고, 학습과 연구가 선도하는 플립형 교육문화가 필요하겠지만, 서울대를 비롯한 거점대들의 교육모형은 여전히 근대 엘리트 대학모형의 틀 안에 머물러 있다. 그런 고정관념 속에서 대학은 권위적으로 이론을 가르치며, 학생을 수업의 노예로 삼는다. 교수는 평가권을 통해 학생의 사유를 제한한다. 미국처럼 엄청난 재원을 퍼붓는 대학들도 이미 교수학습 및 연구방식에서 과감한 변혁을 시도하고 있다.
셋째, 인구 급감과 초고령화 시대를 맞아 새로운 대학 수요를 창조하고 그 경로를 개척할 책무가 있다. 인구 피라미드의 가장 두꺼운 층을 구성하고 있는 45~65세 인구는 지금 갈림길에 있다. 이 세대는 고령화로 인해 노년기를 스스로 지탱해야 하며, 따라서 재훈련 및 노동시장 재진입이 필요한 집단이다. 거점대는 그들이 세련된 현장 경험을 가지고 대학으로 돌아와 새로운 경력을 준비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하며, 이를 위해 일·학습 병행 프로그램을 세련화하고 현지 기업들과 대학이 협업할 수 있는 연결망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대학도 이런 개방을 통해 많은 교육과 연구의 새로운 가치 창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앞으로 새로운 대학모형을 개발하고 고등교육 생태계를 새롭게 구성하는 일은 거점대에 맡겨진 중차대한 과제이다. 그 개혁의 주체는 교육부도 아니고 국가교육위원회도 아니다. 개혁의 주체는 바로 대학 자체이며, 이 공약이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넘어 ‘미래형 대학 10개 만들기’라는 분산적 실험의 마중물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