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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산불’이 비껴간 주왕산 너구마을···굴참나무가 ‘천연 방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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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25일 밤 경북 청송군 주왕산 능선을 타고 내려온 불길이 주왕산국립공원 너구마을 어귀에 다다랐다.

연구진은 주왕산 일대 산불 피해 지역을 수종 구성에 따라 침엽수 우점 지역, 명확한 우점종 없음 2곳, 활엽수 우점 지역으로 분류했다.

침엽수 우점 지역인 국립공원 서쪽 입구 달기약수터 일대는 이번 산불로 관광시설 대부분이 전소되는 등 큰 피해를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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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산불’이 비껴간 주왕산 너구마을···굴참나무가 ‘천연 방패’였다

‘산불 이후’ 경북 청송 가보니

주왕산국립공원 서쪽 입구 부근의 달기약수터는 침엽수림 비율이 높은 지역으로 지난 3월 영남 산불의 피해가 상대적으로 컸다(왼쪽 사진). 반면 주왕산국립공원 내 너구마을은 활엽수가 더 많아 산불 피해가 크지 않았다(오른쪽). 반기웅 기자

주왕산국립공원 서쪽 입구 부근의 달기약수터는 침엽수림 비율이 높은 지역으로 지난 3월 영남 산불의 피해가 상대적으로 컸다(왼쪽 사진). 반면 주왕산국립공원 내 너구마을은 활엽수가 더 많아 산불 피해가 크지 않았다(오른쪽). 반기웅 기자

침엽수 밀집된 공원 서쪽과 달리
활엽수 섞인 동쪽 산불 피해 덜해
“수종 다양성 높여야 방화림 역할”

지난 3월25일 밤 경북 청송군 주왕산 능선을 타고 내려온 불길이 주왕산국립공원 너구마을 어귀에 다다랐다. 화마가 덮치자 주민들은 읍내로 대피했는데, 다음날 마을로 돌아온 주민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산불이 폐가 한 채만 태웠을 뿐 다른 집은 멀쩡했기 때문이다.

너구마을 주민 이정현씨(66)는 “마을 밖이 다 탔으니까 우리 집도 다 탔겠거니 포기하고 왔는데, 피해가 없었다. 마을 인근에 살아 있던 불씨도 자연적으로 꺼졌다”고 말했다. 주왕산국립공원 산림 3분의 1(3260㏊)을 태운 산불이 이 마을을 비켜간 이유는 무엇일까.

21일 그린피스가 낸 ‘보호받지 못한 보호지역: 보호지역 관리실태 보고서’를 보면 주왕산국립공원 침엽수림 비율은 약 34%, 활엽수림은 약 60%였다. 산불 피해가 집중된 곳은 국립공원 서쪽 지역인데, 침엽수가 밀집돼 있었다. 상대적으로 피해가 덜한 동쪽 지역은 굴참나무 군락 등이 혼재된 활엽수림이었다.

침엽수림은 활엽수림에 비해 산불에 취약하다. 침엽수의 정유(기름) 함유량이 높기 때문이다. 대표적 침엽수인 소나무의 송진 정유 함유량은 20%에 달한다. 반면 물푸레나무와 졸참나무, 굴참나무 등 활엽수는 수분 저장 능력이 뛰어나고 수피가 두꺼워 상대적으로 산불에 강하다.

이번 주왕산 산불에서도 침엽수 밀집 지역의 피해가 두드러졌다. 연구진은 주왕산 일대 산불 피해 지역을 수종 구성에 따라 침엽수 우점 지역(침엽수 78%), 명확한 우점종 없음 2곳(활엽수 53.5%·침엽수 42.2%, 침엽수 49.0%·활엽수 43.6%), 활엽수 우점 지역(활엽수 65.1%)으로 분류했다. 침엽수 우점 지역인 국립공원 서쪽 입구 달기약수터 일대는 이번 산불로 관광시설 대부분이 전소되는 등 큰 피해를 입었다.

‘괴물 산불’이 비껴간 주왕산 너구마을···굴참나무가 ‘천연 방패’였다

그린피스, 시뮬레이션 결과
단일림, 산불에 상대적 취약

계곡형 마을 지형, 화세 약화
아래서 위로 분 바람도 한몫

지난 4월29일 산불 발생 한 달여 만에 다시 찾은 현장에서는 여전히 매캐한 탄내가 진동했다. 식당과 차량은 시커멓게 그을린 채 방치돼 있었다.

반면 활엽수 우점 지역인 국립공원 북동쪽의 영덕군 지품면 수암리는 상대적으로 피해가 덜했다. 정밀 식생도로 봤더니 침엽수 군락이 있는 지점의 열화 피해가 심했다. 피해 지역에 있던 활엽수에서는 잎이 돋고 있었고, 전소된 나무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불에 강한 활엽수는 자연 방화림 역할을 한다. 해발 400m 고지에 위치한 너구마을도 활엽수 방화대 덕분에 산불 피해를 면했다. 너구마을은 활엽수(53.5%)와 침엽수(42.2%)가 비교적 균등하게 형성돼 명확한 우점종이 없는 지역에 해당한다. 너구마을 인근에는 낙엽송과 소나무 등 침엽수가 있지만, 굴참나무 등 활엽수도 혼재했다. 특히 마을 반경 약 50m 지역에 졸참나무·물푸레나무 군락과 굴참나무 군락이 형성돼 있었고, 마을 입구에도 느티나무가 여러 그루 있었다. 그린피스는 “해당 지역 서쪽은 산불 피해가 컸지만, 동쪽으로 갈수록 피해가 점차 줄었다”며 “서쪽에서 확산되던 산불이 활엽수림을 만나 기세가 약화돼 불길이 보호지역 외부로 우회하거나 차단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현장 조사에 참여한 윤여창 서울대 농림생물자원학 명예교수는 “마을 주변 느티나무와 참나무가 산불 저지선 역할을 해준 것으로 보인다”며 “불길이 주택으로 옮겨붙는 걸 막아준 셈”이라고 말했다.

그린피스가 기후변화와 산불 등의 영역에서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폴란드 아담 미츠키에비치 대학 연구진에 의뢰한 산불 시뮬레이션 연구에서도 침엽수림은 혼합림에 비해 산불에 취약하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산림 연료습도가 낮은 조건을 가정했을 때, 침엽수 단순림은 산불 시작 2시간 뒤 전체 산림의 30%가량 바이오매스(식물자원)가 연소됐다.

반면 혼합림은 20% 수준의 바이오매스 피해에 그쳤다. 같은 침엽수종이라 해도 혼합림 내 침엽수의 피해가 단순림 내 침엽수 피해보다 덜한 것인데, 단일림 구조가 상대적으로 산불에 취약하다는 의미다. 보고서는 “수종 다양성이 높은 숲은 산불 피해를 막는 천연 방패막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밝혔다.

연구 결과를 검토한 이시영 강원대 방재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시뮬레이션상 침엽수림에서 산불이 수관층으로 옮겨붙으며 빠르게 확산되고, 혼합림에서 수관화의 확산이 느리게 진행됐다”면서 “실제 산불 양상과 상당 부분 유사하다”고 말했다.

다만 그린피스는 산불 대형화의 주요 요인을 침엽수만으로 좁힐 수는 없다고 했다. 예컨대 산불 피해지 달기약수터 인근 사찰 백운사(청송군 청송읍)는 소나무 군락 틈에 자리 잡았지만 피해를 면했다. 백운사 동쪽 절벽 지형과 식생이 부족한 개활지가 서쪽에서 불어오는 강풍을 막아 산불을 둔화시킨 것으로 추정된다. 보고서는 “식생구조뿐 아니라 지형과 바람 또한 산불 대형화의 주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했다.

너구마을 역시 활엽수 군락뿐만 아니라 마을 특유의 계곡 지형과 바람도 산불 피해를 줄이는 데 도움을 줬다. 지난 산불 당시 바람이 아래에서 위로 불었고, 계곡 지형의 영향으로 상승 기류가 형성됐다. 당시 불어오던 바람이 불길을 막아 화세를 약화시킨 것으로 추정된다.

권성환 너구마을 이장은 “마을 주변이 협곡처럼 돼있는데, 그때 바람이 불어서 불이 오다 돌아간 것”이라며 “순간적으로 부는 바람 방향의 영향이 큰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최태영 그린피스 생물다양성 캠페이너는 “다양한 종이 공존하는 복합적이고 자연적인 숲을 유지·보호하는 것이 산불 예방과 피해 최소화를 위한 가장 효과적인 전략”이라며 “산불 이후 생태계 회복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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