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함대’ 러 유조선 대상
‘총 342척’ 자금줄 압박 나서
가스관 등 다음 제재도 준비
유럽연합(EU)과 영국이 러시아에 대한 추가 제재를 결정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통화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을 위한 아무런 돌파구가 마련되지 못하자 러시아 압박에 나선 것이다.
EU 27개국은 20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외교·국방장관회의에서 러시아를 향한 ‘제17차 제재 패키지’를 공식 채택했다고 AP통신 등이 보도했다.
신규 제재안은 ‘그림자 함대’로 불리는 러시아 유조선 189척 대상 추가 제재를 통한 자금줄 압박에 초점을 맞췄다. 이로써 제재 명단에는 총 342척이 오르게 된다. 그림자 함대의 전체 규모는 400척 이상으로 추정된다고 AP는 전했다. 아울러 그림자 함대 운영을 지원한 아랍에미리트연합(UAE)·튀르키예·홍콩 소재 기업들과 러시아의 주요 해운 보험사도 제재를 받게 됐다. 러시아 최대 석유·가스 기업 수르구트네프테가즈도 개별 제재 명단에 포함됐다.
그림자 함대는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방의 경제제재로 수출길이 막히자 다른 나라 선적으로 위장해 원유를 실어나르는 러시아 선박을 뜻한다. 그림자 함대에 대한 유럽의 제재는 지난해 12월 이후 본격화됐다.
영국 외무부도 이날 러시아를 향한 100여건의 신규 제재안을 공개했다. 그림자 함대 18척을 제재 대상에 추가하는 한편, 러시아의 제재 회피를 돕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외환거래소와 러시아 예금보험공사 등 46개 금융 관련 기관도 제재 대상에 포함됐다.
데이비드 래미 영국 외무장관은 “최근 공격으로 푸틴 대통령은 전쟁광으로서의 면모를 다시금 보여줬다”며 “완전하고 무조건적인 휴전에 즉시 동의하도록 압박해야만 정당하고 지속 가능한 평화에 대해 논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유럽은 미국에 제재 강화에 동참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 제재 등 보복 가능성을 시사했으나 지난 19일 푸틴 대통령과 통화 후 태도를 바꿔 유럽의 대러시아 제재에서 한 발 빼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러시아의 행동에 따라 제재 강화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8일 “휴전 협정이 지켜지지 않으면 미국은 추가 제재를 가할 것”이라는 입장에서 후퇴한 것이다. 이를 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와 경제 협력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텔레그램 채널을 통해 “전쟁을 오래 끄는 측은 러시아”라며 이번 신규 제재가 “전쟁을 장기화하려는 (러시아의) 욕망에 대한 대가”라고 말했다. 러시아 외무부는 “유럽의 제재가 우크라이나와의 직접 대화를 막는다”며 비판했다.
이날 발표한 신규 제재는 21일부터 발효된다. 추가 제재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EU는 러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노르트스트림 가스관 운영 기업들과의 거래를 금지하는 방안 등 다음 제재를 이미 준비하고 있다고 폴리티코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