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선웅 연출이 22일 세종문화회관 서울시극단 연습실에서 오는 30일 무대에 오르는 연극 <유령>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제목 따라간다고, 유령이 손에 안 잡히잖아요. <유령>도 비슷한 것 같아요. 작품이 어디로 가는지.”
세종문화회관이 오는 30일부터 서울시극단 단장 고선웅 연출이 14년 만에 선보이는 창작극 <유령>을 무대에 올린다. <유령>은 사회의 무관심 속에서 잊혀지고 지워진 ‘무연고자’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고선웅 연출은 22일 세종문화회관 예술동 연습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사람으로 태어났지만, 주민등록이 없고 호적이 없으면 사람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며 “인생 전체가 뿌리 없이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 마음 아팠다”고 <유령>의 창작 동기를 설명했다.
작품의 시작은 고 연출이 7~8년 전 인상 깊게 읽은 무연고자를 취재한 신문 르포 기사였다. 극에선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던 배명순이란 인물이 신분을 바꾼 채 살아가다 병을 얻고, 무연고자로 생을 마감한다. 죽음 이후 배명순은 유령이 되어 무대로 다시 돌아온다. 자신처럼 지워지고 잊힌 이들과 함께.
무거워 보이는 소재와 달리 고 연출은 “굉장히 재미있는 작품이 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막상 (무연고자들의) 이야기를 하려니 너무 무거웠다. 연극이란 장르는 인물을 이야기해야지 사회 고발이나 내용으로만 이야기하면 관객에게 너무 힘든 상황을 강요하게 된다”며 “인물로 접근하다 보니 연극과 인생이 결부되며 묘한 소동극처럼 풀렸다”고 설명했다.
배명순 역은 배우 이지하가 맡았다. <오징어게임>, <슬기로운 의사생활>, <럭키, 아파트> 등 영화와 드라마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다 6년 만에 무대에 서는 이지하는 “오랜만에 고 연출이 (연극) 출연을 의뢰해서 대본도 읽기 전에 ‘나를 기억해 줘서 고맙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누군가 나를 잊지 않고 기억해냈다는 것, 거기서부터 유령이라는 이야기가 시작한다”고 설명했다.
연극은 일종의 ‘극중극’ 형식으로 진행된다. 배우들이 연극 속 배역대로 연기하다가 어느 순간 배우 자신이 되어 극 바깥에서 이야기하기도 하고 그러다 다시 연극 속 배역으로 돌아가는 등 현실과 연극의 경계를 넘나든다.
고 연출은 ‘온 세상이 하나의 무대이고 모든 사람은 배우일 뿐’이라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말을 인용하며 “거기에서 시작하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그는 “연극을 하다 보면 연기자가 내가 그 역할을 맡은 사람인지, 내가 어디에 있는지 존재에 대한 물음을 던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며 “이처럼 내가 누구인지를 자꾸 묻게 되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시극단 고선웅 연출, 이지하 배우, 강신구 배우.(오른쪽부터) 세종문화회관 제공
공연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연출가로 입지를 굳힌 고선웅은 지난해 각색·연출한 <퉁소소리>로 2024 한국연극평론가협회 ‘올해의 연극 베스트 3’에 선정되고, 최근 백상예술대상에서도 연극상을 수상했다. 그는 시상식에서 “대중예술이라는 장르에 연극이 들어가는 걸 또 한 번 깨달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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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연출은 당시 수상소감에 대해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파이도 크고 파급력도 큰 문화산업이지만, 연극은 지원제도를 통해 예술 그 자체를 위해 존재하는 느낌이 있다보니 4시간 동안 시상식에 있으면서 여러 생각을 했고, 연극인으로서 긍지랄까 사명감도 생겼던 거 같다”고 했다.
대중예술이기도, 그렇지 않기도 한 듯한 연극의 매력에 대해선 이지하 배우가 설명을 보탰다. 그는 “연극은 존재하는 순간 사라지기 때문에 무대가 세상이고, 우리의 이야기가 되는 것 같다”며 “<유령>의 경우도 자신의 과거와 미래, 그리고 오늘의 나를 반추하게 하는 힘이 있는 텍스트”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