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이어진 국내 첫 ‘담배 소송’ 항소심 결심
1심은 건보 패소…조만간 2심 결론 전망

정기석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22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손해배상 소송 항소심 12차 변론기일에 출석하기에 앞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이 국내외 담배회사들을 대상으로 제기한 500억원대 규모의 ‘담배 소송’ 항소심 변론이 마무리됐다. 이 사건은 2014년 4월 건보공단이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해 12년째 이어지고 있다. 2020년 1심에선 건보공단이 패소했는데, 5년 만에 열리는 항소심에서는 재판부가 처음으로 흡연 폐해에 대해 사회적 책임을 묻는 법적 판단을 내릴지 주목된다.
서울고법 민사6-1부(재판장 김제욱)는 22일 건보공단이 KT&G와 한국필립모리스, BAT코리아 등 국내 담배시장 점유율 상위 3사 및 제조사 1곳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의 최종 변론을 진행했다.
건보공단은 담배를 제조·수입·판매한 회사에 흡연 폐해의 사회적 책임을 묻고, 건강보험 재정 누수를 막는다는 취지로 이 소송을 시작했다. 건보공단은 폐암 중 편평세포암·소세포암, 후두암 중 편평세포암을 진단받은 환자 가운데 담배를 20갑년(1갑년은 1년간 하루 1갑씩 흡연했을 때를 기준으로 한 담배 소비량) 이상 또는 30년 이상 피운 3465명에 대해 지급한 2003~2012년간의 건강보험 급여 약 533억원을 담배회사들이 배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1심 재판부는 대상자들이 흡연에 노출된 시기와 정도, 생활 습관, 가족력 등 흡연 외의 다른 위험인자가 없다는 사실이 추가로 증명돼야 한다며 건보공단 패소로 판결했다. 또 건보공단이 급여를 지출하는 것은 보험관계에 따른 것에 불과하고, 직접 피해자로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날 정기석 건보공단 이사장은 지난 변론에 이어 다시 법정에 나와 담배회사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법정에 입장하기 전 기자들을 만나 “환자들이 수술을 앞두고 병원 복도에서 몰래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수없이 봤다. 자기 몸이 하나밖에 없는데도 담배의 중독성 때문에 수술 전에 흡연을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담배가 아니면 폐암에 걸릴 수 없다. 여러 학회도 담배와 폐암의 인과 관계를 지지하고 있다”고 했다.
최근 건보공단은 30년·20갑년 흡연자는 비흡연자보다 소세포폐암 발병 위험이 54.49배 높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호흡기내과 전문의인 정 이사장은 이날 재판부를 향해 “흡연자와 비흡연자 간 폐암 발병 위험도에 대한 비교 자료와 함께 담배가 아니었다면 절대 폐암에 걸릴 수 없는 사례를 주요 증거로 제시했다”며 “건보공단이 청구한 손배액이 일부라도 인정되길 희망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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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1년에 국민 약 6만명이 흡연으로 인한 질병으로 숨진다. 대형 여객기 120대가 추락하는 셈”이라며 “원고(건보공단)는 담배와 암의 역학적, 개인별 인과성을 입증한 반면 피고 측의 과학적 근거는 부족하다.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고 있다는 분명한 믿음을 줘야 한다”고 했다.
재판부는 향후 양측의 참고서면을 추가로 받은 뒤 선고기일을 지정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