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내 아이 품고 사라진 대리모…정상가족 신화의 피해자들](https://img.khan.co.kr/news/2025/05/22/l_2025052301000618900064011.jpg)
엄마가 아니어도
서수진 지음
문학동네 | 282쪽 | 1만6800원
돈으로 우리는 무엇까지 사고팔 수 있을까. 인우는 아이를 갖고 싶다는 남편의 말에 수년간 호르몬 주사를 맞았다. 배에선 아이 대신 혹이 자랐다. 자궁 적출 수술을 받은 그는 팔다리가 떨어져 나간 듯한 상실감을 느낀다. 대리모 브로커의 쪽지는 마음에 뚫린 빈틈을 노린다. 인우는 대리 출산이라는 ‘유혹’에 ‘마약이나 총기 구매를 권유받은 것 같은 충격’을 받지만, 홀린 듯 응한다.
인간을 도구로, 그토록 간절한 아기조차도 돈으로 살 수 있는 물건으로 취급하는 일. 인우는 그 본질에 눈감는다. 한겨레문학상과 젊은작가상을 받은 작가 서수진의 신작 장편 <엄마가 아니어도>는 자신의 선택이 그렇게까지 비인간적인 일은 아니라고 합리화했던 ‘고객’ 인우가 갑자기 연락이 끊긴 대리모 차논을 찾으러 간 태국에서, 불편한 진실을 맞닥뜨리는 이야기다.
돈은 위계를 만든다. 진상 고객처럼 구는 인우에게 차논은 “나를 착취하려고 하지 마세요” 똑 부러지게 말했었다. 그 태도에 인우는 이 관계가 제대로 된 ‘계약 관계’라고 착각한다.
호주인 부부가 태어난 장애아동 양육을 대리모에게 전가한 사건, 일본인 자산가가 다수의 대리모를 통해 아기 10여명을 낳았다가 적발된 사건 등은 인우를 혼란스럽게 한다. 둘 다 2014년의 실화다. 태국은 이를 계기로 이듬해 상업적 대리모 출산을 불법화했다. 소설은 이때를 배경으로 사라진 차논의 뒤를 쫓는 인우의 발버둥을 그린다. 인우에게선 차논을 직접 만나 ‘내가 그렇게까지 최악은 아니다’라는 걸 확인받고픈 이기심이 엿보인다.
또 다른 고객, 동성 부부 요한과 존의 이야기도 교차 서술된다. 호주에 사는 서수진은 4년 전 “내 이야기를 소설로 쓰시라”는 게이 교민의 대리모 출산 이야기에서 책을 시작했다. 촘촘한 취재를 통해 그는 정상가족 신화의 피해자이면서도, 동시에 구조적 착취의 가담자인 대리 출산 의뢰자들의 양면성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