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62채 중 55%만 준공…도 “도로 여건 나빠 작업 속도 더뎌”
경로당 등서 800여명 공동 거주…화장실 등 스트레스 시달려
5개 시군 면적 중 20% 산사태 위험…“예방 공사 허술” 지적도

경북 안동시 길안면 길안중학교 체육관에 마련된 임시 천막에서 두 달째 대피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천현저 할머니가 대피소 생활의 어려움을 털어놓으며 울먹이고 있다.
“6·25전쟁 때보다 더했니더. 이건(산불 피해) 집도 절도 없고, 인생이 와 이러니껴.”
경북 안동시 길안면 길안중학교 체육관에서 21일 만난 천현저 할머니(101)가 눈시울을 붉혔다.
천 할머니는 구호품으로 받은 즉석죽과 고추장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있다. 할머니 옆에는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00세를 맞은 노인에게 건강과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로 증정한 청려장(장수 지팡이)이 놓여 있었다.
천 할머니는 지난 3월22일 발생한 대형 산불로 집을 잃었다. 두 달째 체육관 텐트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거동이 불편해 체육관 정문에서 열 걸음이면 닿는 간이화장실도 멀게만 느껴진다. 여기엔 늘 보던 TV도 없다.
경북지역 이재민을 위해 설치해야 하는 임시주택은 총 2562채다. 이 중 55%인 1401채만 준공됐다. 산불이 난 지 두 달이 지났지만 절반 가까운 이재민이 임시주택조차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경북도 관계자는 “산불 피해지역 도로 여건이 좋지 않아 장비 등이 투입되지 못해 작업 속도가 더디다”며 “6월 말까지는 모든 임시주택을 완공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대피소 생활이 길어지면서 이재민들의 고통도 커지고 있다. 임시주택을 얻지 못한 상당수 이재민은 마을 경로당에서 공동생활을 하고 있다. 농사를 짓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국가재난정보시스템(NDMS)에 따르면 20일 기준 경북지역 이재민 2988명 가운데 836명이 경로당·마을회관에 거주하고 있다. 호텔·모텔(901명)보다는 적지만 친척 집(644명) 등에 머무는 이재민을 더하면 자신의 농경지 인근에서 생활하는 이재민이 가장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
경로당 등의 경우 한방에서 많게는 10명 이상 함께 자면서 잠을 설치고, 화장실 이용 등에서 불편을 겪고 있다. 장기간 집이 아닌 곳에 머물다보니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사례도 나온다.
주민 권오목씨(71)는 “20~30명이 모여 사는 곳에 화장실이 1~2군데뿐이니 매일같이 전쟁이다”라며 “불편하기야 하지만 어쩌겠나. 문제는 임시주택에 입주한 이후다”라고 말했다.
임시주택은 화장실과 세탁기, 냉난방기 등이 갖춰져 있다. 하지만 거주 기한은 1년이다. 그사이 새집을 지어 나가야 한다는 소리다.
산불로 전소된 주택에 대해선 기존 지원금과 추가 지원금 및 기부금을 포함해 1억원가량 보조받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경북에서도 1억원으로 집을 지을 수는 없다.
이정기씨(70대)는 “평당 건축비를 알아보니 최소 700만~800만원은 줘야 한다더라”며 “자식에게 손 벌려야 할 처지”라고 말했다. 경북에서 59㎡ 규모의 집 한 채를 지으려면 최소 2억원이 필요하다.
장마철이 다가오면서 산사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산불로 나무가 고사하면서 산사태 위험은 더 커진 상황이다.
산림청 산사태정보시스템을 보면, 이번에 산불 피해를 본 경북 5개 시군 면적 중 20%가 산사태 위험도 1~2등급 지역에 속한다. 경북에서는 2023년 산사태로 26명이 숨지고 1명이 실종되기도 했다.
이날 임하면 추목리 한 마을에서는 산사태 예방 응급 복구가 한창이었다. 가파른 경사 아래에 모래주머니를 쌓고 있지만 시커멓게 타버린 고사목들을 막아내기엔 역부족으로 보였다.
임하면 신덕리에서 만난 박기석씨(74)는 집터 위쪽에 쌓아둔 모래주머니를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지난 산불로 집을 잃고 그 자리에 고추 등 농작물을 심었다.
박씨는 “비탈면에 모래주머니 쌓아 올린 게 산사태 대비용 긴급 공사라고 한다”며 “그런데 발로 툭 쳐도 모래주머니가 무너져 내린다. 이건 예방이 안 된다”고 말했다.
경북도는 최근 산불 피해가 발생한 551개 마을을 조사해 주택과 인접한 위험 나무 제거, 옹벽 및 배수시설 설치 등 산사태 예방 응급 복구가 필요한 132곳을 선정했다.
- 사회 많이 본 기사
해당 지역에 특별교부세 44억7000만원을 지원해 장마철이 시작되는 다음달 15일까지 응급 복구를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현재까지 응급 복구 공정률은 37.6%에 그친다. 복구 첫 단계라고 할 수 있는 위험 나무 제거 작업도 진도가 60% 수준이다. 산사태를 막는 사방댐 건설은 올해 안에 마무리 짓는 게 어려운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