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풀은 바람에 따라 흔들리지만 땅 아래로 뿌리를 강하게 내리고 있다. 연약하지만 가장 강한 식물일지 모른다. 풀밭을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사진을 찍게 된다. ⓒ레나
<쿠니미츠의 정치>라는 만화가 있다. 공부를 많이 하진 못했지만, 의리와 착한 마음씨를 지닌 쿠니미츠가 세상을 바꾸려는 친구의 결의에 감동해 정치에 입문하는 내용이다. 쿠니미츠의 첫 번째 임무는 낙선한 정치인의 비서가 되어 그를 작은 시의 시장으로 만드는 것이다.
쿠니미츠가 도착한 장소는 부패한 시장이 세금을 착복하느라 비리와 부정으로 얼룩지고 공공시설과 영세한 가게들이 하나둘씩 사라지는 중이었다. 이권만 생각하는 정치인들과 마을 유지 사이의 정경유착이 굳건해 사람들은 ‘어차피 항의해봤자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마음가짐으로 살면서 몰락하게 된 도시의 모습에 쿠니미츠는 “누군가 바꿔줄 거라고 생각만 하고 있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고, 점점 더 썩어간다”고 말하며 도덕적인 정치인을 돕기 시작한다. 쿠니미츠는 직접 사람들을 만나 투표를 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 상기시켰고, 결국 시민들의 90%가 투표에 참여하게 된다.
만화적 상상력이 많이 가미된 줄거리지만, 이 만화를 읽으면서 계속해서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단어가 있었다. ‘풀뿌리 민주주의’였다. 중앙정부나 엘리트의 영역에서만 이뤄지는 정치가 아니라 일상에서, 지역사회에서 실현되는 민주주의. 김대중 대통령이 주장했던 그 단어가 내내 머릿속에 맴돌았다. 불의에 직면했을 때,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갈 수 있었던 기저에는 풀뿌리 민주주의에 대한 개념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집 지하실에서 그림을 그리던 대학생들이 경찰들에게 맞아가며 끌려가던 것을 보고 이유를 묻는 어린아이에게 무서운 얼굴로 아이의 입을 막던 1980년대와 비교하면 아들딸의 손을 잡고 광장으로 나서고, 재치 있는 깃발을 제작해 흔들며, 응원봉을 손에 들고 같이 노래를 부르는 2025년이 더 건강하지 않은가.
돌이켜 보면 풀뿌리 민주주의가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시민단체 지원에 힘을 기울인 덕분에 다양한 사회문제를 다루는 시민단체들이 조직됐고, 정보화 정책 덕분에 정치 참여 문턱이 낮아졌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정책에 관한 자신의 의사를 밝히는 것 자체가 정치 참여라는 것을 우리는 자연스럽게 습득한 셈이다. 국민으로서의 가장 큰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대통령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참여가 민주주의의 시작’이라는 말을 다시금 되새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