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5월13~15일 실시한 전화 면접조사에 따르면, 새 대통령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국정과제로 경제 회복과 민생 안정을 꼽은 응답자가 절반을 넘었다. 주요 대선 후보들의 공약에도 이런 유권자들의 바람이 반영돼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세계를 선도하는 경제강국’ 등 6개 경제 관련 공약을,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자유 주도 성장, 기업하기 좋은 나라’ 등 7개를 10대 공약에 포함하고 있다.
그런데 정치가 유권자의 바람을 받드는 것은 거기까지였다. 공약을 실천하기 위한 구체적 정책들을 살펴보면, 구호 수준의 나열식 약속과 이미 논의됐던 대책들로 가득하고 막상 정책 실행에 필요한 구체적 재정 규모와 조달 방법은 아예 없다. 새로운 내용이라면, 인공지능(AI)을 경제성장 동력으로 꼽고 있다는 정도다. 이 후보와 김 후보 모두 AI 예산 증액과 민관합동펀드 100조원, AI 생태계 조성, 인력 양성 등 유사한 공약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챗GPT 같은 AI 기초모델을 만들겠다는 건지, AI 응용 스타트업을 지원해 글로벌 시장 진출을 돕겠다는 건지, 기존 빅테크에 전략적 투자자로 참여하겠다는 건지, 아니면 이 모든 것을 독자적으로 하겠다는 건지 불분명하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추세적 저성장의 원인 진단이 빠진 정책들이 저성장 추세를 되돌리고 동남권 공업지대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산업 공동화에 대한 충분한 대책인지 의문이다. 지난 18일 대선 후보 TV토론에서도 저성장에 대한 근본적 논의는 아예 다뤄지지도 않았다. 소상공인 정책이 반복되고 청년·노인 문제 대책이 수없이 나왔으나, 내수가 살아나지도 않고 경제적 약자의 삶도 나아지지 않고 있다. 출생률이나 부동산 문제에도 이미 실효성이 입증되지 않은 정책들을 나열하고 있을 뿐이다.
앞으로 5년간 국정을 책임질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이처럼 공허하고 무책임한 공약으로 점철되는 정치가 정상적인가? 대통령 탄핵으로 60일 만에 치러지는 조기 대선 때문이라고 치부할 수만도 없다. 탄핵 없이 치러진 대선에서도 정책선거가 이뤄진 적이 없다.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한국 정치가 바뀔까.
정치를 바꾸기 위해 개헌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한다. 필자 역시 대통령 중임제 개헌에 찬성한다. 그러나 개헌만으로 정치와 선거 풍토가 바뀔 수 있을까? 극렬 지지층이 각 당의 후보 선출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이들의 지지를 받은 정치인이 주요 정당의 후보가 되고, 짧은 선거운동 기간을 거쳐 이들 중에서 일반 국민이 대통령을 선출하는 현행 선거 방식을 바꿔야 비로소 바뀔 수 있다.
무엇보다, 공직선거 과정에 여론조사 결과를 사용하는 것을 금지해야 한다. 여론조사는 신속하고 저렴하다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조작 가능성과 극단적 지지층 의견의 과잉 반영이라는 심각한 문제를 지니고 있다. 특히 십알단, 드루킹, 명태균 게이트 등을 경험했음에도 여론조사를 공직자 선출에 여전히 활용하고 있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국민 여론을 반영하려면, 사전 등록 절차를 거친 유권자만이 응답하는 엄격한 관리가 필요하고 또 이는 선거관리위원회의 감독을 받아야 한다.
대통령 공식 선거운동 기간과 각 정당 후보 선출 기간도 늘려야 한다. 선거 기간이 짧을수록 선거 비용이 적게 드는 장점도 있으나, 후보들의 준비와 생각을 언론과 국민이 충분히 검증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가 보장되지 않는 치명적 약점도 있다. 대통령을 뽑고 나니 이런 사람인 줄 몰랐다고 한탄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지 않은가. 선거 기간의 확대와 더불어, 대통령 후보 TV토론에 전문가 패널이 질의하고 후보가 답변하는 양식을 추가하는 것도 고려할 필요가 있고, 10대 공약과 함께 그에 따른 구체적인 비용 추계와 재정 조달 방식을 의무적으로 제출하게 해야 한다.
헌법을 개정하게 된다면, 결선투표도 대선에 꼭 도입해야 한다. 결선투표가 없으니 항상 후보 단일화라는 정치 이벤트가 선거의 초점을 흐리고 정책이 아닌 정략이 난무하는 선거로 분위기를 몰아간다. 단일화 없이 다양한 생각과 정책을 지닌 후보들이 일차적으로 경쟁하도록 하고, 이를 통해 국민이 최종 후보를 선택하도록 해야만 정략이 아닌 정책 경쟁이 가능해진다.
그럼에도, 이번 선거는 여느 때처럼, 정치 구도가 결정적이고 정책은 액세서리 역할에 그칠 것 같다. 정치는 바뀌지 못했지만, 새 대통령이 선거운동을 통해, 경제구조에 대한 근본적 개혁 없이는 저성장과 산업 공동화 그리고 불평등과 양극화의 심화를 해결할 수 없음을 깨달을 수 있길 바랄 뿐이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