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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년 만에 소년과 함께 걷는 광주…‘소년이 온다’ 인문투어

  • 천소현 여행작가 광주
‘소년이 온다’ 인문투어의 시작점 전일빌딩245의 전일마루에서 내려다 본 518민주광장의 모습.  사진 천소현 사진 크게보기

‘소년이 온다’ 인문투어의 시작점 전일빌딩245의 전일마루에서 내려다 본 518민주광장의 모습. 사진 천소현

소설가 김중혁은 말했다. “그 나라의 표정을 읽고 싶으면 음악을, 그 나라의 생각을 보고 싶으면 영화를, 그 나라 사람들의 마음을 읽고 싶으면 소설을” 보라고. 그렇다면, 한강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는 광주의 마음이다. 그것도 가장 아픈 마음일 것이다. 한국인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의 고향 광주가 다시 아픈 5월을 맞이했다. 45년째 광주가 앓고 또 앓으며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소년 ‘동호’와 함께 걸어가는 인문투어에서 들을 수 있었다.

‘소년이 온다’ 인문투어
전일빌딩245-> 5·18시계탑-> 상무관-> 5·18민주광장-> 옛 전남도청-> 옛 광주 적십자병원-> 금남로-> 5·18민주화운동기록관

전일빌딩245 내부의 헬기 사격 흔적과 그날에 멈춰 서있는 전일빌딩245 전시관의 달력. 사진 천소현 사진 크게보기

전일빌딩245 내부의 헬기 사격 흔적과 그날에 멈춰 서있는 전일빌딩245 전시관의 달력. 사진 천소현

인문투어의 시작점, 전일빌딩245

‘소년이 온다’ 인문투어는 전일빌딩245에서 시작됐다. 정확히는 로비 북카페 앞이다. 이곳에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을 기념해 역대 수상 작가의 작품을 비치해 두었다. 가장 상단에 비치된 <소년이 온다>는 1980년 광주에서 계엄군에 의해 희생된 소년 동호와 주변 인물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그 청취의 시작점인 전일빌딩245도 자신의 이야기가 있다. 빌딩 이름에 붙은 245는 5·18 당시 전일빌딩에 쏟아진 헬기 사격이 남긴 상처의 개수다.

스토리텔링을 맡은 예술여행도슨트는 옥상 전망대 ‘전일마루’로 일행을 이끌었다. 2시간 동안 진행될 투어 코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이다. 시민군과 계엄군의 대치가 있었던 금남로 일대와 YMCA, 연말까지 복원 공사가 진행 중인 옛 전남도청과 상무관의 좌표를 확인할 때 즈음 광장 분수대의 물줄기가 존재를 알리듯 쏴아 하고 솟구쳤다. 그 옆에서 자전거 묘기를 연습하던 예닐곱 소년들이 급하게 땀방울을 털어내고 있었다.

전일빌딩245와 518시계탑. 사진 천소현 사진 크게보기

전일빌딩245와 518시계탑. 사진 천소현

소년이 걸어오는 시간, 5·18시계탑

광장의 5·18시계탑은 그날을 목격했다는 이유로 수난을 당했다. 군사정권 시절 광주의 시간이 자꾸만 ‘그해 오월’로 돌아가는 것이 마치 이 시계탑 때문이라는 듯, 철거되어 다른 곳으로 이전된 바 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시계탑은 다시 광장으로 돌아와 매일 오후 5시18분에 ‘임을 위한 행진곡’을 연주한다.

<소년이 온다>의 시간도 멈춰 있지 않다. 한강 작가는 1980년 5월부터 5년 뒤, 10년 뒤, 그리고 현재까지 이어온 ‘소년의 걸음걸이’를 떠올리며 소설의 제목을 <소년이 온다>로 지었다고 했다. 그래서 3장 이후 동호를 기억으로 호명해 내는 은숙, 진수, 선주, 동호 어머니의 이야기는 그날이 아니라 그날 이후의 삶을 그린다. 에필로그에 등장하는 작가의 시간은 이 소설을 집필한 2013년이다. 많은 이가 소설을 읽고 광주를 찾는 현재는 2025년이다. 초침도 없이 돌아가는 5·18시계탑은 과거를 현재로, 그리고 미래로 천천히 밀어내고 있었다.

옛 전남도청. 광주 시청 제공 사진 크게보기

옛 전남도청. 광주 시청 제공

압도적인 고통…상무관과 옛 전남도청

복원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상무관과 옛 전남도청은 과거 45년 세월을 거슬러 무엇을 복원하게 될까. 본의 아니게 중요한 야외 전시가 되어버린 가림막 속 흑백사진에는 수많은 소년이 있다. 소설 속 16살 동호의 역할은 상무관에 안치된 시민의 시신을 수습하고, 초를 켜두는 일이었다. 그리고 쓰러진 친구 정대를 찾지 못한 채 옛 전남도청 최후의 항쟁에서 마지막을 맞이했다.

집필하는 내내 ‘압도적 고통’을 느꼈다던 한강 작가에게 소설의 방향을 정해준 기록도 최후의 시민군 중 한 명의 것이었다. 작가가 본 자료, 26살 박용준 야학교사의 일기장에는 이렇게 써 있었다. “하느님, 왜 저에게는 양심이 있어 이렇게 저를 찌르고 아프게 하는 것입니까? 저는 살고 싶습니다.” 이 기록을 접한 작가는 <소년이 온다>의 방향을 폭력이 아닌 존엄으로 결정할 수 있었다고 했다. 복원을 끝낸 상무관과 옛 전남도청도 그러했으면 좋겠다. 모쪼록 고통으로 찌르지 않고, 존중하는 방식이길 바란다.

아무것도 지우지 말아요…분수대와 회화나무

전일빌딩 옥상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분수대의 물줄기는 생각보다 힘이 셌다. 이렇게 시원하고 좋은데, 1980년 광주의 여고생, 19살 은숙은 도청 민원실에 전화를 걸었다. “어떻게 벌써 분수대에서 물이 나옵니까. 무슨 축제라고 물이 나옵니까. 얼마나 됐다고. 어떻게 벌써 그럴 수 있습니까.” 실제로 광주 사람들은 ‘6월에 솟기 시작한 분수대의 물이 그곳에서 쓰러져 간 사람들의 핏자국을 지운다’며,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숨죽여 울었다고 한다. 인문투어를 통해 더듬어 가던 광주의 마음이 적시며 스며들었다.

눈물을 쏟았을까. 모든 걸 지켜보았던 광장의 회화나무는 말라서 죽었다. 작가는 “모든 것을 지켜본 은행나무들의 상당수가 뽑혀 나가고, 백오십년 된 회화나무가 말라 죽기 전에 왔어야 했다”라고 기록했다. 나무는 죽었지만, 또 죽지 않았다. 다행히 자손 나무를 키우고 있던 시민의 기증으로 후계목이 대를 이어가고 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죽은 나무를 치우지 않았던 광주의 마음을 짐작해 보았다. 꺾이지 않으려 했던 그 마음을.

영원한 수수께끼 하나, 옛 광주 적십자병원

계엄군의 집단 발포가 있던 1980년 5월21일은 공교롭게도 석가탄신일이었다. 전남대병원, 조선대병원, 광주 적십자병원만 응급실을 가동하는 휴일이었고, 그중 발포지에서 가장 가까운 병원이 광주 적십자병원이었다. 직접 걸어가 보니 500m 남짓한 거리다.

한강 작가는 아버지가 가져온 광주사진첩에서 처음 광주 적십자병원을 보았다. 부상자용 헌혈을 위해 병원 앞에 길게 줄 선 사람들의 모습에서 12살 소녀가 품었던 수수께끼는 훗날 자신의 작품을 관통하는 질문이 되었다. “어떻게 그들은 그토록 사랑하는가? 그들을 둘러싼 세상은 왜 그토록 아름다우며 동시에 폭력적인가?” 당시 병원에서는 시민군과 소수지만 일부 계엄군까지 치료했다. 인근 상인들이 시민군들을 숨겨 주었던 그곳은 아시아음식문화거리가 됐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던 시간 끝에 옛 광주 적십자병원은 폐건물로 남았지만, 연두색 펜스에 둘러쳐진 걸개전과 더불어 5월 한 달 동안 실로 오랜만에 병원 내부를 공개하는 중이다.

옛 광주 적십자병원. 사진 천소현 사진 크게보기

옛 광주 적십자병원. 사진 천소현

마지막 당부, 금남로와 5·18민주화운동기록관

충장로의 골목을 훑으며 다시 광장으로 돌아오는 길에 ‘금남로’를 만났다. 계엄군의 집단 발포로 순식간에 시민들이 쓰러져 간 거리다. 길 건너 5·18민주화운동기록관 벽면에 걸린 대형 현수막이 새로운 장처럼 펼쳐졌다. “그러니까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 소설 속 구절처럼 <소년이 온다>는 광주를 그 이름 이상의 무엇으로 만들었다. 소설에서 간접적으로 언급한 동일방직 사건이나, 용산 철거민 참사에서 작가가 본 것은 또 다른 광주였다.

1980년 당시 가톨릭회관에서 모든 것을 목격했던 사제들은 정권의 탄압 속에서도 광주에서 일어난 일을 국내외에 알리는 데 앞장섰다. 2011년에 이르러 5·18기록물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고, 가톨릭회관은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이 되어 기록을 영구히 보존하는 역할을 맡았다.

‘소년이 온다’ 인문투어는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 끝났지만, 도슨트는 조심스레 참가자들에게 다음 목적지를 알려주었다.

“이제 당신이 나를 이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나를 밝은 쪽으로, 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 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이는 한강 작가의 당부이기도 했다.

※ ‘소년이 온다’ 인문투어 신청하세요
무료로 참가할 수 있는 ‘소년이 온다’ 인문투어는 5월부터 12월까지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 30분, 오후 4시에 상설로 운영된다. 참가 신청은 유선 접수(062-233-0242)와 현장 접수(전일빌딩 245 1층 로비 북카페 앞) 모두 가능하며, 6월부터는 전일빌딩 245 홈페이지에서도 신청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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