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저널(WSJ)이 22일(현지시간) 미 국방 당국자들을 인용해 ‘트럼프 행정부가 주한미군 병력 약 4500명을 한국에서 철수시켜 괌 등 인도태평양 지역 내로 배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다만 이 방안이 아직 트럼프 대통령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은 상태이며, 현재 고위 당국자들이 논의 중인 여러 아이디어의 하나라고 WSJ는 전했다. 미 안보당국 일각의 구상이나 여론 떠보기일 수 있으나, 한·미 동맹의 향후 방향성과 동북아 안보 지형을 바꿀 수 있는 민감한 얘기다.
이 구상은 이른바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 개념과 맞닿아 있다. 전략적 유연성이란 북한 도발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에 배치된 주한미군 역할을 바꿔 중국 견제 등에 투입한다는 미국의 글로벌 전략 개념이다. 실제 요근래 트럼프 행정부의 ‘군불때기’도 활발하다. 랜들 슈라이버 전 국방부 인도·태평양 안보 차관보는 지난 13일 인도·태평양안보연구소(IIPS) 창립 간담회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수립 중인 국방전략이 “한·미 동맹이 단순히 북한과의 무력충돌에 대비하는 차원을 넘어, 한반도 주둔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확대를 통해 중국과의 보다 광범위한 경쟁을 염두에 두게 될 것”이라고 했다.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도 얼마 전 “주한미군의 역할은 북한을 격퇴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며 중국 견제를 위해서라도 주한미군 역할이 오히려 확대돼야 한다고 밝혔다. 한국이 동맹국을 넘어, 미·중 전략 경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새로운 위상을 강요받고 있는 상황이다.
미 당국자들의 잇단 ‘주한미군 재배치 검토’ 발언을 보는 해석은 다각적이다. 주한미군이 단순히 ‘한국 방어’를 넘어 ‘지역 안정’이나 ‘미국의 국가 이익’에 따라 운용될 경우, 한국은 원치 않는 무력 충돌에 휘말릴 수 있다. 미국에서는 전략적 효용성이 큰 주한미군의 감축·이전을 두고 신중론도 적잖아, 이런 보도 자체가 한국으로부터 방위비 분담금 대폭 증액이나 관세 협상을 유리하게 끌고 가려는 외교·통상적 협상 카드일 가능성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한국을 가리켜 “머니 머신”이라며 자신이 대통령이었다면 방위비를 연간 100억달러(약 14조원) 내게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트럼프 행정부 시절에도 주한미군 감축과 방위비 분담금 인상은 반복적으로 제기됐다.
주한미군은 WSJ 보도에 대해 “미국은 대한민국 방위에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으며 , 차기 정부 관리들과 협력하며 철통 같은 동맹을 유지하고 강화하길 기대한다”며 주한미군 감축 보도는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우리 국방부는 “한·미 간 논의된 사항은 전혀 없다”고 밝혔고, 외교부도 같은 입장을 내놓았다. 주한미군이 차기 정부와의 대화까지 언급하며 ‘현 상황 유지’ 뜻을 밝힌 것은 유의미하다. 그러나 과거에도 한·미 간 주요 외교 현안이 언론 보도로 먼저 나온 전례도 있어 사실 여부나 트럼프 정부 진의에 대한 철저한 파악이 선행돼야 한다. 차기 정부는 미국의 대외 정책과 해외 주둔 미군 정책 변화, 한반도의 현실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대책을 세워야 한다. 어느 상황에서도, 세계가 겪는 트럼프 격변기에 국익과 안보, 국민 안전을 우선해 주도면밀한 외교 전략이 수반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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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부가 주한미군 감축을 검토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보도한 23일 경기 평택시 주한미군기지 캠프 험프리스에 헬기와 차량 등이 서 있다. 정효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