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술의 섬’ 장도와 여수를 잇는 330m 길이의 보행자 전용 진섬다리는 해수면과 거의 맞닿아 있어, 섬을 찾기 전 물때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여수 뒤엔 습관처럼 밤바다가 붙는다. 머릿속에선 기타 선율이 저절로 재생되고 입은 노래를 흥얼거린다. 밤바다를 그린 노래를 따라 여수는 낭만의 상징이 되었다. 그 낭만이 어찌 밤에만 있을까. 밤의 여수 바다가 잔잔함이라면, 낮의 여수 바다는 찬란함이다. 햇살을 잔뜩 머금어 쨍한 생기가 파도와 함께 넘실댄다. 눈부시게 빛나는 여수의 초여름을 거닐었다.
파랑·보라·분홍…여름엔 수국의 섬, 장도

수국이 만개한 장도.
장도에는 늘 수식어가 붙는다. ‘예술의 섬’이다. 장도는 본래 여수를 지키는 거점이었다. 조선 시대에는 섬에 석성을 쌓기도 했다. 그래서 섬 이름에 ‘막을 장(障)’이 들어간다. 그랬던 장도가 예술과 자연이 어우러진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GS칼텍스의 사회 공헌 사업을 통해서다.
섬으로 가기 위해서는 진섬다리를 지나야 한다. 길이 330m의 보행자 전용 다리로 잔잔한 파도를 맞으며 육지와 장도를 잇는다. 해수면과 맞닿은 탓에 바다 사이에 길이 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물때의 영향을 받는다. 다리가 잠기면 섬에 들어갈 수 없으니 미리 물때를 확인하자. 장도 출입 가능 시간은 ‘GS칼텍스 예울마루’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다리를 따라 10분 정도 걸으면 장도에 도착한다. 예술의 섬이라는 이름처럼 장도 곳곳에선 조각상과 예술작품들이 저마다의 매력을 뽐낸다. 하지만 봄이 지고 여름이 빛나기 시작하는 이 시기엔 사람들의 눈과 감탄사는 다른 곳으로 향한다. 주인공은 수국이다.
6월, 장도는 수국의 섬이다. 곳곳에 파랑, 보라, 분홍의 수국이 피어나 발길 닿는 곳마다 수국과 바다가 펼쳐진다. 그중에서도 가장 여수다운 풍경을 고르라면 역시 섬 초입의 다도해정원이다. 다도해정원은 ‘오션뷰 수국’ 명소다. 언덕을 따라 조성되어서 입구에서 바라보면 하늘이 배경이 된다. 반대로 정상에서 바라보면 바다를 배경으로 수국이 가득하다. 정원에 핀 수국은 파란색이다. 하늘만큼 파랗고 바다만큼 푸른 수국이 가득하다. 그렇게 오션뷰 수국이 완성된다.
벤치에 앉아 바라보는 풍경은 온통 푸르다. 푸른색의 종류가 이렇게나 많다니. 알로록달로록 자연의 색이 참 새삼스럽다. 이게 초여름 여수의 색이고 낭만이다. 지금, 여수로 떠날 마음을 먹어야 하는 이유다.
도심 속 바다 산책, 웅천친수공원
장도에서 육지를 바라보면 많은 사람이 해변을 걷는 모습이 보인다. 해수욕장처럼 보이는 이곳은 웅천친수공원이다. ‘친수(親水)’라는 이름처럼 물과 친해지길 바라는 마음이 담겼다. 그 바람에 응답하듯, 주민들은 신발을 벗고 바닷물을 온전히 느끼며 걷는다. 웅천친수공원은 해안을 따라 조성되었다. 나무 덱 산책로가 있어 모래를 밟지 않고 걷기에도 좋고, 그늘막이 다문다문 놓여 있어 ‘바다멍’을 즐기며 쉬기에도 좋다. 그늘막의 생김새가 파라솔을 닮아 근사한 휴양지로 여행을 온 것도 같다. 그늘막과 산책로 옆으로는 소나무가 줄지어 섰다. 흔한 해변 솔숲인가 했는데 웬걸, 소나무 너머는 캠핑장이다. 도시와 오솔길, 나무와 바다를 모두 품은 환경에 많은 이들이 이곳에서 캠핑을 즐긴다. 낭만과 평화가 공존하는 이 공원에는 특별한 비밀이 있다. 햇살 아래 빛나는 해변은 사실 인공적으로 만들어졌다. 해안 바닥에 나무 덱을 깔고 그 위에 고운 모래를 덮었다. 인공해변의 길이는 360m. 너무 길지도 짧지도 않으니 누구에게나 적당한 산책 코스다.
웅천친수공원의 또 다른 특별함은 평온함이다.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은 아니기에 번잡함과 소란함이 덜하다. 그 흔한 푸드트럭도, 포장마차도 없지만 그 자리를 고요함이 대신한다. 차분히 앉아 바다를 감상하고, 때로는 끝없는 사색에 빠지기에 좋은 해변이라는 뜻이다. 이곳에서만큼은 동네 주민도 잠시 들른 이방인도 모두 같은 마음이다. 바다가 주는 여유로움, 그거면 된다. 낭만을 즐기는 데에 무엇이 더 필요하랴.
시멘트 저장고가 전망대로, 여수 스카이타워

여수 스카이타워
높은 곳에서 여수 바다를 내려다보고 싶다면 여수 스카이타워로 향하자. 전망대라고 하기엔 어딘가 공장 같기도 한 외관이 눈길을 끈다. 스카이타워는 1980년대 동양시멘트 공장의 시멘트 사일로(저장고)였다. 당시 공장 건물은 다 철거되고 두 기의 사일로만 방치되어 있었는데,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를 맞아 여수 관광의 상징물로 재탄생했다.
스카이타워의 높이는 67m.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면 20층 전망대까지 한 번에 간다. 엘리베이터는 통유리로 되어 있어 올라가는 동안 시시각각 다른 풍경을 선사한다. 바다가 점점 더 넓어지고, 먼 곳의 섬들이 하나둘씩 등장하는 장면의 변화를 감상하다 보면 전망대 도착이다.
전망대의 매력은 역시 파노라마 뷰 아닐까. 스카이타워 역시 360도로 탁 트인 시야로 여수를 한눈에 담아낸다. 여수세계박람회장과 시내, 바다 위에 뜬 오동도와 수많은 섬, 잔잔한 남해 등 여수의 전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날씨가 좋다면 발코니로 나가 보자. 풍경과 눈 사이에 놓였던 유리 벽 하나가 사라졌을 뿐인데, 여수가 더욱더 생생하게 다가온다.
전망대는 카페이기도 하다. 쑥 라테와 해풍 쑥차, 쑥 아이스크림 등 거문도 쑥을 활용한 메뉴들을 선보인다. 쌉쌀한 쑥 아이스크림을 입안에서 녹여가며 바다를 내려다보니 새삼 여수에 온 게 실감 난다. 카페에서 더 들어가면 아찔한 공도 있다. 건물과 건물을 잇는 구간의 바닥을 유리로 만들어 아래가 훤히 보인다. 강심장이라면 유리 위에 올라서 보자. 여행에 짜릿한 기억이 더해진다.
낮과 밤 반전 매력, 종포해양공원·소호동동다리

빨간 등대가 인상적인 종포해양공원.

드넓은 바다로 개방감을 주는 소호동동다리. 여수의 낮바다가 여행객에게 펼쳐 보이는 풍경들이다.
밤바다의 도시답게 여수에는 야경 명소가 많다. 종포해양공원과 소호동동다리는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관광지다. 종포해양공원은 이순신광장에서 낭만포차거리에 이르는 대규모 해양공원이다. 낭만포차거리가 생기면서 종포해양공원은 밤바다의 상징이 되었다.
달이 지고 해가 뜨면 밤의 북적임은 활기라는 새 옷을 입는다. 어선이 쉼 없이 지나가고, 상인들은 바삐 움직인다. 이에 질세라 바다에도 생기가 돈다. 어둠 속에선 보이지 않았던 초록빛 물결이 일렁이고, 알록달록 케이블카가 오간다.
해양공원 끝자락에 자리한 하멜등대도 밤과 낮이 다르다. 1663년부터 1666년까지 여수에 머물렀던 네덜란드의 선원 헨드릭 하멜(Hendrick Hamel)의 이름을 딴 등대다. 새빨간 색깔 덕분에 멀리서도 눈에 띈다. 해양공원과 함께 야경 명소로 꼽히지만, 낮의 등대는 더욱 영롱하다. 파란 하늘과 초록 바다, 그사이에 선 빨간 등대의 색 조합은 태양 아래에서만 볼 수 있는 장면이기에.
바다 위를 지나는 해상보행교, 소호동동다리 또한 야경 명소다. 밤이 되면 다리에 형형색색의 조명이 켜지고, 포토존에 불이 들어온다. 그래서 로맨틱한 밤 데이트 장소로 꼽힌다. 낮의 소호동동다리는 어떨까. 무지갯빛 조명은 없지만, 드넓은 바다와 마을이 어우러진 풍경이 여행자를 반긴다. 동그랗게 동동 뜬 섬들은 바다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고, 쭉 뻗은 길은 시원한 개방감을 준다. 다리 아래 찰랑거리는 물결이 보이니 바다 위를 걷는 게 실감 난다.
나무 덱으로 된 길이라 걸을 때마다 발걸음이 동동 울린다. 그래서 동동다리인가 싶었지만 사실 그 이름은 꽤 오랜 역사에서 비롯됐다. 고려 후기 침입한 왜구를 유탁 장군이 물리쳤는데, 이를 기뻐하며 군사들이 부른 노래가 ‘동동’이라고. 귀여운 어감에 장엄한 이야기가 담겼다. 유래를 알고 나니 발걸음에 괜스레 힘이 더 실린다. 승리의 기쁨이 깃든 다리에서 넓고 푸른 바다를 바라본다. 찬란하게 반짝이는 바다가 지금 이곳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