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주에 선거를 치른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탄핵 이후 시간이 빨리 흘러서가 아니라, 국가를 책임지는 대통령을 뽑는 선거임에도 정책 수준이 너무 낮기 때문이다. 두 번의 TV토론까지 마친 지금, 남은 일주일 동안 공약이 실질적으로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도 들지 않는다.
전세사기 대응 공약만 봐도 그렇다. 아예 관심조차 없는 내란 정당의 후보는 차치하고, 이재명 후보가 내건 ‘보증제도 개선’과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은 구체성이 너무 부족하다. 다양한 피해 유형을 반영한 구제안이나 재발 방지를 위한 설계가 보이지 않는다.
전세사기는 건설·금융·세금·법률이 얽힌 구조적 문제다. 실효성 있는 대책은 기획재정부와 법무부 등 여러 관계 부처의 협업이 전제돼야 한다. 그러나 이번 공약은 여전히 국토교통부 중심 대응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 전 정부처럼 근본적으로 접근하지 않아 피해가 반복되는 일을 막으려면, 보다 더 전향적인 정책 기획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후보가 직접 강조한 정책이라면, 현장까지 가닿을 수 있도록 구체적인 집행 로드맵과 실현 전략이 함께 제시돼야 한다.
정책 실종은 비단 전세사기 대응에만 그치지 않는다. 지난 대선이 부동산 정책 실패에 대한 ‘심판 선거’였다면, 이번에는 그 부담감으로 인해 후보들이 관련 논의를 회피하고 있는 듯하다.
다행히 더불어민주당과 민주노동당 후보가 공공임대 확대와 세입자 보호 등 꼭 필요한 방향을 언급한 점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양질의 공공임대를 어떻게 공급할 것인지, 민간의 역할 및 공공성 확보는 어떻게 할 것인지 등 세밀함은 여전히 부족하다. 지역과 계층별 여건을 반영하고, 다양한 주거복지 서비스를 연계하는 정책도 빠져 있다. 세입자에 대한 안전망이 취약하다는 게 수년간 낱낱이 드러난 현실에서, 실패한 재개발 모델을 반복하겠다는 공약은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충분한 계약기간, 보증금 반환 의무, 부담 가능한 임대료의 시장 형성 등 실질적인 세입자 보호 대책 없이는 공약은 또 한 번 선언에 그치고 말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지난 3년을 사실상 허송세월한 지금, 다음 정부의 역할이 더욱 막중해졌다. 특히 고령화, 지방 소멸, 기후위기 등 구조적 과제가 복합적으로 겹쳐 있는 오늘의 대한민국에서 단순히 숫자만 늘리는 식의 공약으로는 새로운 지평을 열기는커녕 기존 틀의 반복에 그칠 공산이 크다.
누가 당선되든, 선거 직후부터 공약의 디테일을 하나하나 보완해야 한다. 각 부처에 명확한 비전과 실행 로드맵을 제시해 체계적인 정책 집행이 가능케 해야 한다. 그래야만 실질적인 성과도 기대할 수 있다.
조기 대선이라는 특수성이 지금의 불완전한 공약들을 설명해주는 유일한 사정이길 바란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또다시 5년을 잃게 될 것이다.

이한솔 한국사회주택협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