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뒤 선출될 21대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반이자 국가원수이다. 삼권분립에 따라 대통령은 입법부인 국회와 상호 견제와 균형의 관계를 잘 유지할 책임이 있다. 민주주의는 권력의 균형과 견제를 통해 건강하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만약 법치주의 국가에서 입법권이 제대로 통제받지 않으면, 권력분립은 심각한 위기를 맞게 된다. 안타깝게도 최근 정국은 이러한 우려를 현실화하는 듯 보인다.
현 22대 국회는 범야권이 의석의 3분의 2에 육박하는 192석을 확보하며 출범했다. 국회 내 의사결정에 있어 강력한 구조적 우위를 의미하는 숫자이다. 일반 법안은 재적 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 의원 과반수 찬성으로 통과되며, 재적 의원 5분의 3 동의만 있으면 특정 법안이 패스트트랙 절차에 오른다. 300석 중 180석만 확보하면 거의 모든 법률을 만들거나 바꿀 수 있는 것이다. 현 범야권 의석수는 이들 기준 대부분을 충족하거나 근접하고 있어, 사실상 국회 내 자체적인 견제 장치는 작동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이 유일한 제동 장치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 다수당 출신일 경우라면 이마저도 무용지물이다. 우리나라는 국민소환제도 없다. 선거로 선출된 사람이라도 과한 충성 경쟁이나 사익 추구로 직무 수행이 부적격하다고 판단될 경우, 국민투표로 파면할 수 있도록 소환제를 도입하자는 목소리는 계속 있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지난 2월 입법으로 국민소환제를 추진하겠다고 밝히기도 했지만 감감무소식이다.
선거 제도에 대한 개혁 요구도 마찬가지다. 다수 정당에 유리한 소선거구제를 중선거구제로 전환하자는 주장은 오래전부터 제기됐지만, 실질적 논의는 정체된 상태다. 정치권 스스로 자신들에게 유리한 도구를 내려놓을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문제는 입법권의 독주가 단지 정치 구조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법치주의, 재정건전성, 그리고 서민의 삶을 직접적으로 위협할 수 있다. 대표적 사례가 ‘검경 수사권 조정’이다. 야당 주도로 패스트트랙을 통해 처리된 이 법안은 수사 체계를 복잡하게 만들어 심각한 처리 지연, 기관 간 중복 조사와 책임 회피를 초래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가고 있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최근 입법권의 사법부에 대한 압박이다. 대법원 판결에 대한 불만으로 대법원장의 사퇴를 요구하고, 청문회에 소환하려 했다가 여의치 않자 특별검사법을 발의했다. 대법관 수를 현행 14명에서 최대 100명까지 늘리는 법안까지 제출하며 사법부 인적 구성을 사실상 입법부가 재편하려 시도 중이다. 베네수엘라 차베스 정권이나 필리핀 두테르테 정권 사례에서 보듯, 사법부 독립이 훼손되면 결국 법은 권력의 도구로 전락하고 만다.
법치주의는 우리 삶의 구석구석에 큰 영향을 미친다. 예산이나 부동산뿐 아니라 범칙금, 아동수당, 반려견 등록도 법에 근거한다.
따라서 재정 지출이 인기영합적으로 확대될 경우 국가 재정의 안정성이 흔들릴 수 있고, 형사사법 제도의 설계가 정치적 이해에 따라 변동되면 권력형 범죄에 대한 실효적 대응도 약화될 수 있다.
바로 이 점에서, 제도를 바꾸는 힘은 결국 시민의 지속적인 감시와 참여에서 나온다. 주권자인 시민은 단지 투표하는 존재가 아니라, 선출된 권력을 지속적으로 바라보고 질문하고 요구하는 존재다.
거대한 권력은 늘 존재해왔다. 하지만 건강한 민주주의는 그 권력을 어떻게든 견제하려는 시민의 노력에서 만들어진다. 시민은 단지 ‘투표 행위’에 참여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 이후에도 계속 권력을 주시하고, 책임을 묻고, 변화를 요구하는 존재여야 한다. 정치는 법 위에 설 수 없다. 권력을 견제하려는 시민의 냉철한 시선이야말로, 법치주의를 지키는 최후의 방어선일 것이다.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