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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에 불 지르고 영웅이 된 ‘800형’…중국판 최저임금 경쟁의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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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0일 중국 쓰촨성 이빈시 핑산현의 한 방직공장에 화재가 발생했다.

회사 공식 자료에 따르면 방화가 발생한 공장은 2019년 세워졌다.

이 무렵 저장·광둥성 등 동남부 해안지대에 있던 많은 공장들이 임금인상을 피해 동남아 또는 중국 내륙 농촌으로 생산기지를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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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에 불 지르고 영웅이 된 ‘800형’…중국판 최저임금 경쟁의 그늘

쓰촨성 섬유공장에 불 지른 27세 노동자

범행동기 체불임금설 퍼지며 영웅 대접

공안당국 “임금 미지급설은 허위” 반박

중화권 누리꾼들이 지난 20일 쓰촨성 핑산현 공장에서 발생한 화재사건을 모티브로 만든 인공지능(AI) 생성 이미지. 방화범이 미지급 임금 800위안을 받아내려 불을 질렀다고 소문이 퍼지면서 열광적 반응이 생겨났다. 중국 공안당국은 ‘800위안 미지급설’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엑스 캡처

중화권 누리꾼들이 지난 20일 쓰촨성 핑산현 공장에서 발생한 화재사건을 모티브로 만든 인공지능(AI) 생성 이미지. 방화범이 미지급 임금 800위안을 받아내려 불을 질렀다고 소문이 퍼지면서 열광적 반응이 생겨났다. 중국 공안당국은 ‘800위안 미지급설’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엑스 캡처

지난 20일 중국 쓰촨성 이빈시 핑산현의 한 방직공장에 화재가 발생했다. 불은 37시간 만에 꺼졌다. 화재 원인은 방화. 불을 지른 이는 전 공장직원 원모씨(27)였다.

핑산현 공안국이 지난 23일 발표한 수사결과에 따르면 원씨는 어린 시절부터 가정형편과 학업중단 경험으로 ‘비관적’이고 ‘자폐적’ 성격을 지녔다. 학교 중퇴 후 출외공인(중국판 이주노동자)으로 일하다 올해 설 연휴 고향으로 돌아왔다. 지난 3월부터 핑산현 방직공장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지난 4월25일 첫 월급 4158위안(약 79만원)을 받았다.

원씨는 3개월 수습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지난달 30일 사직 의사를 밝혔다. 회사 측은 이달 15일 남은 월급 5370위안(약 102만원)을 지급하며 퇴직 절차를 마무리했다. 원씨는 이때 원한을 품어 닷새 만에 공장을 찾아 불을 지르고 관리자를 흉기로 찔렀다. 현장에서 체포됐다.

원씨는 월급을 어머니에게 전달하고 자살하려 했는데, 때를 놓쳐 복수하는 심정으로 불을 질렀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관리자는 신속하게 병원으로 옮겨져 생명에 지장은 없었다. 공장의 재산피해는 1000만위안(약 19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 쓰촨성 핑산현의 방직공장에 20일 화재가 발생했다. /엑스.

중국 쓰촨성 핑산현의 방직공장에 20일 화재가 발생했다. /엑스.

경찰이 원씨의 신상과 범행동기를 상세히 공개한 이유는 방화사건 이후 여론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경찰은 처음에는 관행대로 ‘방화 용의자 원모씨(27세 남), 범행동기 조사 중’이라고만 공개했다. 원씨가 병든 어머니와 함께 어렵게 살고 있으며 임금 800위안(약15만원)을 받지 못해 불을 질렀다는 소문이 빠르게 퍼졌다.

원씨는 ‘800형(오빠)’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노동자의 영웅” “그를 이해한다”는 반응과 함께 전국 곳곳에서 임금을 체불당한 경험담이 쏟아졌다. ‘800형’의 팬들은 공장의 막대한 재산피해에 통쾌해했으며 불이 37시간 만에 꺼졌다는 점에서 ‘쉽게 꺼지지 않는 혁명의 불꽃’에 비유하기도 했다. 인공지능(AI)을 이용해 만든 ‘800형’이 공장에 불 지르는 모습의 애니메이션풍 그림도 인기를 끌었다.

자신이 변호사라고 밝힌 한 누리꾼은 “방화는 극단적 행동이지만 법은 노동자가 임금을 떼일 때는 어디 있다가 불을 질러야만 나타나는가”라고 개탄했다.

경찰은 ‘임금 미지급’은 사실이 아니라며 유언비어를 유포한 사람도 처벌했다고 밝혔다. ‘이슈에 대한 관심과 토론을 끌어낼 목적’으로 800위안 미지급설을 지어내 올렸다고 진술한 핑산현 캉모씨(48)는 구류 6일, 온라인에서 원씨를 ‘영웅’이라고 부른 허모씨(44)는 벌금 300위안(약5만원) 처분을 받았다.

중화권 네티즌 사이에서 ‘800형’ 관련해 가장 인기를 끈 이미지. 간체자로 “내가 걸어간 이후 그들은 너희에게 미지급 임금을 지급했다. 그들이 착해져서가 아니라 내가 시도했기 때문이다”고 적혀 있다. /엑스

중화권 네티즌 사이에서 ‘800형’ 관련해 가장 인기를 끈 이미지. 간체자로 “내가 걸어간 이후 그들은 너희에게 미지급 임금을 지급했다. 그들이 착해져서가 아니라 내가 시도했기 때문이다”고 적혀 있다. /엑스

회사 공식 자료에 따르면 방화가 발생한 공장은 2019년 세워졌다. 이 무렵 저장·광둥성 등 동남부 해안지대에 있던 많은 공장들이 임금인상을 피해 동남아 또는 중국 내륙 농촌으로 생산기지를 옮겼다. 중국 정부는 ‘공동부유’를 내세워 국내 이전을 유도했다. 이 공장도 저장성 자싱시에 있다가 정부 농촌 진흥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고 인구 30만명의 소도시 핑산현으로 옮겼다.

공장이 옮겨온 농촌 지역에는 일자리가 생겨나고 경제가 성장했다. 그러나 제조업 전체로 보면 저임금 경쟁이 가속화됐다. 중국 공장의 농촌 대이동은 타오바오(알리바바), 핀둬둬(테무), 징둥 등을 통한 전자상거래가 본격화한 시기와 맞물린다. 저임금으로 틔운 숨통이 플랫폼 최저가 경쟁으로 다시 막혔다. 기업마다 낮은 수익률로 허덕였다. 중국의 농촌은 동남아의 신흥 도시와 저임금 경쟁을 하며 버텨왔다고 전해진다.

이런 배경에서 노동자에 대한 제도적 지원은 미비했다. 이는 경기침체로 임금체불 등 쟁의가 늘었을 때 극단적 갈등의 불씨가 되고 있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이달 중순부터 중국 전역에서 임금체불에 항의하는 노동자 시위가 늘고 있다고 보도했다. 재정이 열악한 지역의 학교, 보건소 등 공공기관과 인프라 사업장에서도 수당이 6개월씩 밀렸다는 증언도 있다.

구이저우의 노동관계 연구자 ‘쉐’는 RFA에 “노조위원장이 사장에 의해 임명돼 노동자 이익을 대변하지 못하고 고용관계도 시장지향적이라 분배의 공정성이 부족하다”며 노동자의 권리가 전반적으로 억눌리고 약화된 상황을 이번 방화사건의 배경이라고 꼽았다. ‘800형’에 대한 열광이 쏟아진 이유라고도 지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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