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선거 이후의 민주주의



완독

경향신문

공유하기

닫기

보기 설정

닫기

글자 크기

컬러 모드

컬러 모드

닫기

본문 요약

닫기
인공지능 기술로 자동 요약된 내용입니다. 전체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본문과 함께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제공 = 경향신문&NAVER MEDIA API)

내 뉴스플리에 저장

닫기

선거 이후의 민주주의

다음주면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고, 선출과 동시에 임기를 시작한다. 하지만 내란의 우두머리가 거리와 영화관을 활보하고 그를 비호하거나 이용하려는 세력들이 권력을 놓지 않는 상황이라 시민들의 근심은 쉽게 줄어들지 않을 것 같다. 더구나 선거 이후에도 정치에 개입하려는 법적인 다툼과 본질을 가리는 혐오는 계속될 듯하다. 여대야소의 상황이 되더라도 지난 정치사를 살펴보면 선거 이후 갈등이 더 심해지거나 그로 인해 정계개편이 이루어지곤 했다.

선거의 반민주적인 잠재력

그리고 헌법 개정부터 차별금지법과 공공재생에너지법 제정, 의료와 연금체계 개혁까지 중요한 사회 의제들의 진전도 후보들의 토론회를 보면 쉬울 것 같지 않다. 단순한 인식의 차이라면 거리를 좁히면 되겠지만 배후의 이해관계는 차이를 내세워 논의의 진전을 가로막는다. 의제를 실현하라는 시민사회의 요구가 강해질수록 제도정치는 내란의 터널에서 나오려 하지 않을 것이다.

더글러스 러미스는 <래디컬 민주주의>에서 시민들이 만든 급진적인 변화의 불씨와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운동이 선거를 맞이해 빠르게 수그러드는 현상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며 “민주적인 선거의 반민주적인 잠재력”을 지적했다. 선거는 공적인 행동에 나섰던 시민들의 요구와 희망을 정치인에 대한 지지나 반대로 대체하고 바로잡아야 할 분명한 불의를 추상적인 구호로 바꾼다. 선거 이후에는 시민들이 정의롭지 못한 일상으로 복귀하기에 정치인들은 선거 기간 동안 잠시 움츠릴 뿐 권력을 돌려줄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모든 선거는 아니지만 어떤 선거는 민주주의에 해롭다.

그리고 네드 오거먼은 <모두를 위한 정치>에서 시민들이 ‘선거-오락 복합체’에 사로잡혀 있다고 주장한다. 정치가 비즈니스로 변한 세계에서 정치인은 시민들의 극적인 취향을 충족시켜주는 스타이자 쇼호스트이다. 정치 뉴스를 즐기든 즐기지 않든 “방송이 정치를 접하는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에 우리는 선정적이거나 음모론에 기반하거나 순전히 어리석은 정치 보도에 말려든다”. 이런 정치를 비판하는 사람들조차 정치가 합리적인 토론과 합의에 기반해야 한다는 생각이 이상적이고 공허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낙심한다. 사람들은 여러 매체를 통해 많은 정보를 얻고 더 많이 발언하지만 해피엔딩을 원하는 시청자의 역할에 머문다.

당신이 열광하든 냉소하든

어쩌면 우리만큼 이런 부조리를 잘 알고 있는 시민들도 없을 것이다. 시민들이 힘겹게 일군 변화의 가능성을 매번 정치인들이 마무리하며 그 성과를 챙기고 시민을 정치의 들러리로 만들어왔다. 정치인들의 선정적인 충돌은 정치적인 조정 과정이나 성찰 없이 사법적인 판단으로 이어졌고, 정치를 보조해야 할 법이 정치 앞에 나서는 결과를 초래했다. 선거는 선출되지 않는 엘리트들이 행정부와 사법부의 경계를 넘어 국회로 진출하는 비민주적인 상황에 정당성을 부여했고 삼권분립의 취지는 무의미해졌다. 엘리트들이 정책을 좌우하면서 정책 결정 과정은 폐쇄적으로 변해갔고, 그 불투명함은 음모를 부추기는 정치 오락의 소재가 되기 쉬웠다. 따라서 근본적인 변화 없이는 민주주의가 불가능한데 정작 그 변화를 이끌어갈 세력이 없다.

그렇다고 선거와 정치를 회피하거나 포기하자는 건 아니다. 열광하든 냉소하든 정치적인 결정은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각오할 것은 민주주의 실현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만큼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선거는 정치적인 스트레스를 잠깐이나마 날려주는 시원한 이벤트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이벤트의 효과는 그리 오래가지 않고 선거 결과에 따라 긴 후유증도 생긴다. 그러니 신중하게 한 표를 행사해야 하지만 그 한 표의 의미를 지나치게 무겁게 여길 이유는 없다. 지금의 조건에서는 선거를 통해 민주주의가 실현되기 어렵다.

우리는 기후와 생태계의 위기,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해소와 존엄한 삶이라는 어렵고 시한이 임박한 숙제를 꽤 긴 논의를 거쳐 풀어가야 한다. 매우 어려운 숙제이지만 다행히도 그것을 푸는 데 도움이 될 정책은 이미 꽤 많이 제시돼 있다. 그것을 실행하면서 문제를 점검하고 보완할 정치가 아직 작동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선거 이후 실천해야 할 정치는 어떤 형태일까? 민주주의는 그 정치에 달려 있다.

하승우 이후연구소 소장

하승우 이후연구소 소장

  • AD
  • AD
  • AD

연재 레터를 구독하시려면 뉴스레터 수신 동의가 필요합니다. 동의하시겠어요?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콘텐츠 서비스(연재, 이슈, 기자 신규 기사 알림 등)를 메일로 추천 및 안내 받을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아니오

레터 구독을 취소하시겠어요?

구독 취소하기
뉴스레터 수신 동의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안녕하세요.

연재 레터 등록을 위해 회원님의 이메일 주소 인증이 필요합니다.

회원가입시 등록한 이메일 주소입니다. 이메일 주소 변경은 마이페이지에서 가능합니다.
보기
이메일 주소는 회원님 본인의 이메일 주소를 입력합니다. 이메일 주소를 잘못 입력하신 경우, 인증번호가 포함된 메일이 발송되지 않습니다.
뉴스레터 수신 동의
닫기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로 인증메일을 발송했습니다. 아래 확인 버튼을 누르면 연재 레터 구독이 완료됩니다.

연재 레터 구독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닫기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