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는, 사회가 나아갈 방향과 대안을 두고 경쟁하는 장이다. 복수의 대안이 없거나, 복수라도 구별되지 않는다면 시민 선택권은 제한되고 그만큼 민주주의도 훼손된다.
원내 정당의 대통령 후보들은 각자 개성과 정당 배경에서 명백히 구별된다. 하지만 모든 측면에서 그런 것은 아니다. 특히 이념적 정체성에서 그렇다. 국민의힘은 내란 동조로 극우화했다는 비판에 직면하자 보수 적통임을 강조한다. 개혁신당은 국민의힘이 놓아버린 보수 역할을 대신하는 합리적 보수를 자임한다. 민주당은 중도보수 노선을 천명한 뒤 보수 인물을 영입하고, 보수 정책을 채택하며 당 보수화를 추진한다. 자신이 속했던 정당이 가짜 보수라는 한 의원은 진짜 보수를 찾아 민주당에 입당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각자 얼마나 다른 존재인지 부각하느라 애쓰는 것 이상으로 얼마나 동류인지, 다시 말해 누가 진짜 보수인지를 두고 다투고 있다. 이번 대선의 중요한 특징 하나는 보수 경쟁이고,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진짜 보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헌정질서를 무너뜨리고 민주적 기본 질서를 거부한 세력을 지지기반으로 한 김문수는 이미 보수에서 탈락했다. 이준석은 반동적 기독교, 반공·반북의 낡은 이념을 거부하고 실용적 태도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보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여성·노인·장애인·이주자 같은 소수자를 차별하고 혐오를 부추긴다. 이걸 굳이 보수라고 한다면, 차별에 특화된, ‘반사회적 보수’가 될 것이다. 이재명은 많은 노력을 했지만 보수 진영이 자기 편으로 받아주지 않는다. 이 ‘보수 신인’은 좀 더 테스트를 거쳐야 한다.
자칭 보수들이 큰 목소리로 보수 부재를 알리는 데 반해 진보는 침묵으로 부재를 증명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이 권영국 후보를 냈지만, 그는 유감스럽게도 많은 이들의 시선을 받지 못하고 있다. 지금 이렇게 보수도 진보도 없는 선거가 치러지고 있다.
대선은 사회 진전을 가로막던 장벽이 스스로 무너지면서 열린 공간이다. 갑갑했던 시야가 확 트였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 앞에 펼쳐진 것은 새로운 사회의 전망이 아니라 보수 확산의 역설이다. 장벽 붕괴가 다양성의 해방이 아니라 획일성의 확장을 가져왔다.
보수 확산을, 무너진 보수의 빈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각 정파의 정략적 접근이 낳은 일시적 현상이라고 무시할 일이 아니다. 그것은 중대한 정책 변화를 수반한다. 거대 양당 후보는 재벌 중심 경제, 성장주의, 감세, 소수자 차별로 동맹을 맺고 있다. 이 동맹은 재벌개혁, 불안정 노동, 증세, 차별금지, 불평등 해소와 같이 마땅히 선거 쟁점이 되어야 할 의제를 배제한다. 이는 양당제가 낳은 현상이다. 양당제는 다른 이념·비전을 가진 제3당의 등장을 막으면서 의제를 통제하고 대안을 제한한다. 진보정당의 국회 진출 좌절이 좋은 증거다. 보수정당도 마찬가지다. 국민의힘 외의 대안을 차단한다.
이 때문에 국민의힘은 내란 세력과 단절하기는커녕 그들과 한몸이 되어 선거를 치르는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이재명이 집권해도 제1야당으로서 반대를 독점할 특권을 누릴 수 있다. 국민의힘이 자기 혁신에 목숨 걸 이유가 없는 것이다. 양당제는 한국 정치에 채워진 족쇄다.
모든 후보가 분권형 개헌을 공약했다. 개헌은 대결 정치를 끝내고 대화 정치를 시작할 수 있다는 믿음에 근거하고 있다. 이 믿음으로 개헌을 해도 양당제를 그대로 두는 한, 온전한 대화 정치를 기대하기 어렵다. 양당의 적대적 공존은 대화와 협치를 밀쳐낼 것이다. 분권은 행정부 차원뿐 아니라 정당 차원에서도 필요하다. 선거제 개편으로 다당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다당제는 정당 간 경쟁과 협력을 촉진하면서 강력한 권력 분산 효과를 낸다. 보수 일색의 한국 정치에 다원성도 선물한다. 한국이 다당제를 했다면, 내란 책임이 있는 국민의힘은 제3, 4당으로 전락하고, 그사이 진보정당이 유력 정당으로 발돋움할 기회를 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당신이 진보정당을 지지할지 말지는 중요하지 않다. 한쪽 날개를 잃은 새를 생각해보라. 40년 된 민주주의가 그런 결함을 갖고 있다는 것은 시민의 자존심에 관한 문제이다.
정치개혁의 핵심은 양당 기득권에 갇힌 정치적 역동성을 끄집어내는 것이다. 정치를 바꾸자는 소리가 어느 때보다 높아야 할 시점에 정치개혁론이 사라졌다. 한국 민주주의가 어디에서 성장을 멈췄는지 잘 말해준다.

이대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