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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세균도 세상을 뜨는구나

입력 2025.05.28 20:52

수정 2025.05.28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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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세균도 세상을 뜨는구나

지름 3㎝에 길이 6m인 관의 부피는 4000㎖가 넘는다. 이는 소장의 부피를 어림잡아 계산한 양이다.

생리학자들은 소장 안으로 하루 약 10ℓ의 액체가 들어온다고 말한다. 마신 물과 음식에 든 것 약 2ℓ에 소화효소나 침, 담즙의 양 약 8ℓ를 더한 값이다. 실로 어마어마한 양의 물이 매일 소장을 들락거리는 셈이다. 밥을 먹고 소화하는 동안에는 물과 으깬 음식물이 섞여서 우당탕 위와 소장을 지나가겠지만 잠을 자느라 먹지 못한 채 맞은 새벽에 소장에 든 물의 양은 얼마나 될까?

이런 질문을 하는 까닭은 지난주 세미나 시간에 공복 시 장액의 양이 500㎖라는 소리를 들어서다. 내 깜냥에는 너무 많은 양이라 논문을 찾아보았더니 공복 시 소장 내 물의 양은 고작 43㎖ 정도에 불과했다. 작은 요구르트병 절반 조금 더 되는 양의 물이 있는 것이다. 아마 가물어 물이 마른 실개천의 모습을 떠올리면 될 듯싶다. 음식과 물이 함께 들어와도 위는 한꺼번에 많은 양의 음식물을 소장으로 보내지는 않는다. 붕어빵틀에 반죽 붓듯 조금씩 부어야 강한 위산을 중화할 여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렇듯 우리 소화기관은 식사하고 난 뒤에 거의 쉬지 않고 끊임없이 일해야 하루 10ℓ에 해당하는 양의 물을 처리할 수 있다.

공복 상태에서 240㎖의 물을 마신 뒤 위와 소장에서 부피 변화를 측정한 영국 노팅엄대학의 루카 마르치아니의 연구 결과를 잠시 들여다보자. 이른 아침 빈 위의 부피는 약 35㎖이다. 물을 마시자마자 위의 부피는 242㎖로 늘었다가 약 13분이 지나면 그 절반으로 줄어든다. 그리고 45분이면 본디 상태로 돌아간다. 그에 따라 소장의 부피도 늘어나 약 94㎖가 되고 위에서 물이 다 비워지는 시간쯤에는 77㎖로 줄어든다.

텅 빈 관의 산술적 부피는 크지만, 그 안에 점막이 들어앉고 그 표면에 빼곡하게 융모가 들어차면 상황은 달라진다. 소화기관으로 들어온 것은 음식물이든 물이든 건성으로 흘러가거나 쉽사리 소화되지 않는다. 그 어떤 것도 놓치지 않으려 효소와 소장 평활근은 쉬지 않고 움직인다. 소화기관의 하루는 하염없이 길다.

그렇게 음식물의 가장 요긴한 ‘고갱이’를 취한 우리 몸은 남은 찌꺼기를 대장으로 보낸다. 대장은 지름이 평균 8㎝로 크지만 길이는 1.5m에 불과하다. 하지만 음식물이 머무르는 시간은 소장보다 훨씬 길어서 그 안에서도 많은 사건이 벌어진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얼핏 생각하면 대변을 빚는 일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그 전에 해결해야 할 것이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대장에 둥지를 튼 장 세균을 배불리 먹이는 일이다. 음식물을 입으로 집어넣을 때 ‘소장 너머’로 갈 것을 따로 신경 써야 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질문해보자. 대장에 도달한 음식물 가운데, 먹을 게 모자라 배를 주린 세균은 무엇을 노리겠는가? 바로 이웃한 대장의 점막이다. 점막 표면은 단백질과 다당류로 구성돼 있어 세균의 구미에 맞는다. 허기진 세균이 점막을 노리면 두 가지 나쁜 일이 찾아온다. 우선 점막 틈이 벌어져 누수가 생긴다. 장에 있어야 할 세균이 복강으로 들어와 좋아질 일은 하나도 없다. 다른 하나는 점막 다당류에 접근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소수파 세균이 하릴없이 굶어 죽는다는 점이다.

미국 스탠퍼드 의과대학의 저스틴 소넨버그 연구팀은 인간의 세균을 쥐의 대장에 이식한 뒤, 쥐에게 식이섬유가 적은 음식물을 7주 동안 먹이고 추이를 살펴보았다. 그러자 놀랍게도 약 60%의 세균 종이 사라졌다. 다시 고식이섬유로 식단을 바꿔 4주가 지나자 사라졌던 세균의 절반 정도가 돌아왔다. 소넨버그는 심지어 세대를 이어가며 식이섬유가 적은 음식물의 효과를 확인했다. 쥐의 시간으로 4세대를 넘으면 제아무리 성찬을 차려도 한번 사라진 세균은 되돌아오지 않았다.

소화기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두고 세균의 다양성이 줄었다고 개탄한다. 소넨버그의 솔직한 논문 제목도 섬뜩하다. ‘빈약한 음식물 탓에 소화기관에 사는 세균들이 멸종의 길을 걷는다.’ 쥐는 그렇다 치고 인간의 사정은 좀 나을까?

마침 써레질 끝나고 모내기할 절기이다. 50년 전 젊은 아비가 끌던 쟁기날에 잘린 풀뿌리를 씹어 먹던 어린 나는 이제 매일 고기반찬에 빵을 간식으로 먹는다. 유산균이 잔뜩 든 요구르트도 무척 달다. 냉동 음식은 지천으로 흔하고 짜고 단 음식은 소장의 문턱을 넘지 못한다. 세균은 자꾸 굶고 인간은 마냥 살이 찐다.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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