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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뚜리앙

8개월여 전. 뚜리앙은 아침을 먹고 집 문을 나선다. 곱슬곱슬한 머리에, 유색인이지만 피부가 희고 고운 편이며, 생글생글 웃고 있는 눈동자는 높이 매달린 열매처럼 또렷하고 부드러우며 맑다. 그의 나이 27세.

아침 8시경, 모곡 마을의 새들이 운다. 미얀마 만달레이에서 북쪽으로 200㎞ 떨어진 산간마을 모곡. 최고급의 루비가 생산되는 곳. 지구에서 소비되는 루비의 60%가 그곳에서 나온다. 모곡 마을이 시작된 건 지금으로부터 800년 전. 미얀마의 소수민족 중 하나인 샨족 사냥꾼 셋이 길을 잃고 헤매다 루비를 발견한 곳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자연스럽게 마을이 만들어졌다.

웅장한 산과 계곡으로 둘러싸인 모곡에서 태어나고 자란 뚜리앙이 집을 떠나 날아가려는 곳은 한국. 엄마는 마당까지 아들을 따라 나온다. 다민족 국가인 미얀마에는 135개 이상의 크고 작은 종족이 존재한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네팔인의 피가 흐르지만, 그는 소수민족 중 하나인 노산족으로 분류된다. 버마족이 아니어서 징집 대상자가 아니지만 미얀마의 내전이 지속되면 그도 군인으로 징집될 수 있다. 마당까지 따라 나온 엄마는 운다. “뚜리앙, 기도해.”

대학교에서 영어를 전공하고, 미용 기술이 있어 미용사로 일했던 그는 루비 광산의 광부이기도 했다. 대학에서 배운 영어는 그가 앞날을 계획하는 데 별다른 도움이 안 되고, 모곡의 루비 생산은 예전 같지 않고, 쿠데타로 권력을 움켜쥔 군부와 그에 저항하는 시민군의 전쟁은 4년째 계속되고 있다.

한국에 가려면 국제공항이 있는 양곤까지 가야 한다. 미얀마의 옛 수도이자 최대 도시인 양곤은 군인 도시가 됐다. 택시가 뚜리앙과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다. 곧장 가면 모곡에서 양곤까지 7시간 남짓. 전쟁 중이어서 6일 걸린다. 곳곳에 검문하는 군인들이 있고, 곳곳에서 군경과 시민반군이 전쟁 중이어서, 반원을 그리며 가야 한다. 양곤은 만달레이보다 더 남쪽에 있다.

뚜리앙 부자를 태운 택시는 북쪽으로 올라가 서쪽으로 포물선을 그리며 내려온다. 불도저가 지나가며 만든 길은 구불구불 휘어 있고 비포장이다. 밤 9시가 돼서야 숙소가 있는 마을에 도착. 이튿날 아침 6시에 출발해 밤이 늦어서야 숙소가 있는 마을에 도착, 그 이튿날에도. 또. 그리고 또. 밤 5시에 만달레이에 도착해 숙소를 찾아들어 하룻밤을 잔다. 만달레이까지 오는 동안 군인들이 검문하고 있는 곳을 50곳이나 지난다. 별말 없이 보내주는 군인도 있지만, “먹을 거 있어? 돈 있어? 내놔.” 시민군 훈련의 흔적을 찾으려 팔을 살펴보는 군인, 짐이 든 상자를 칼로 찢고 그 안을 헤집는 군인. 만달레이에서 양곤까지 가는 버스에는 전쟁 때문에 고향을 탈출해 양곤으로 가는 사람들이 가득 타고 있다. 군인들은 주로 시골 마을에 폭격을 퍼붓고, 집을 불태우고, 민간인들을 학살하고 있다. “뚜리앙, 잘 가라. 기도해라. 어디든, 기도하는 곳이 있으면 들어가 기도해.” 아버지는 혼자 집으로 돌아간다.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 뚜리앙이 도착한 곳은 김포의 창틀 만드는 공장. 다닌 지 3개월 남짓, 뚜리앙은 이주노동자 실업자가 된다. 공장이 어려워지면서 이주노동자들을 내보냈다. 김포의 이웃살이(예수회 이주노동자지원센터)에서 제공하는 쉼터에서 지내며 그는 새로 일할 공장을 찾고 있다. 종이상자 공장에 면접을 보러 오라는 메시지가 온다. 5명 뽑는데 30명이 면접을 보기 위해 와 있다. 30명 다 외국에서 온 친구들이다. 일하던 공장들이 망하거나, 인원을 줄이면서 실업자가 된 친구들.

뚜리앙은 5년 뒤에 모곡으로 돌아가 미용실을 차리고 싶다. 머리를 만지는 일은 노래를 들으면서 할 수 있으니까, 노래를 부르며 할 수 있으니까. 마을 아이들에게 영어도 가르쳐주고. “세상? 세상은 아름다워. 산이 가장 아름다워. 폭포도, 내 엄마 목소리도 아름다워. 난 아름다운 걸 잘 느껴. 루비보다 새가 더 아름다워. 새는 항상 보여. 루비는 잘 안 보여. 날아가는 새를 보면 행복해, 자유로워.” 그가 자라면서 보고, 느끼고, 감탄하고 즐겼던 아름다운 것들은 그의 목소리에, 표정에, 눈빛에, 몸짓에 깃들어 있다. 아름다운 뚜리앙은 메시지를 기다린다. 고용하겠다는, 종이상자 공장의 메시지.

김숨 소설가

김숨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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