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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배구 전설의 ‘왼손 공격수’ 장윤창 별세··· 향년 65세

입력 2025.05.30 16:45

장윤창 경기대 스포츠과학부 교수가 30일 향년 65세로 별세했다. 사진은 1990년 2월12일 대통령배 배구 고려증권과 현재자동차써비스 경기에서 스파이크를 시도하는 장윤창의 모습. 연합뉴스

장윤창 경기대 스포츠과학부 교수가 30일 향년 65세로 별세했다. 사진은 1990년 2월12일 대통령배 배구 고려증권과 현재자동차써비스 경기에서 스파이크를 시도하는 장윤창의 모습. 연합뉴스

1980~1990년대 한국 남자 배구를 대표하던 공격수 장윤창 경기대 스포츠과학부 교수가 30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65세.

장 교수는 한국 남자 배구 최고 스타였다.

장 교수는 1978년 인창고 2학년 17세 때 최연소로 대표팀에 발탁됐고, 그해 세계선수권대회 4강을 이끌었다. 같은해 방콕 아시안게임, 19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에서는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에서는 은메달을 땄다. 한국 남자배구 황금기의 중심에 있었다. 1984년 LA올림픽 때도 강만수, 김호철 등 쟁쟁한 멤버들과 함께 5승을 올리며 대회 5위에 올랐다.

장 교수는 실업 배구에서도 최고의 선수였다. 1983년 고려증권 창단 멤버로 실업 배구 전성시대를 이끌었다. 1984년 대통령배 원년 대회에서 인기 선수상을 받으며 팀 우승을 견인했다. 이후로도 장 교수는 고려증권 대표 공격수로 팀을 이끌었다. 고려증권은 V리그의 모태가 된 대통령배 대회와 슈퍼리그에서 역대 최다인 6회 우승을 차지했다.

장 교수는 한국을 대표하는 왼손 공격수였다. 스파이크 서브를 한국에서 처음 선 보인 것도 장 교수였다. 활처럼 휘어지는 유연한 허리로 타점 높은 공격을 때리며 현역 시절 ‘돌고래’라는 별명이 붙었다.

장 교수는 은퇴 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조지워싱턴대에서 체육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한국체대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모교인 경기대에서 스포츠과학부 교수로 활동해왔다. 대한배구협회 강화이사를 거쳐 2011년 출범한 대한민국스포츠국가대표선수회 회장과 한국배구연맹 경기위원도 역임했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2호실에 차려졌다. 6월1일 오전 5시30분 발인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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