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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로 사라지기

입력 2025.06.05 20:53

수정 2025.06.05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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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훤 작가
  • 기사를 재생 중이에요

그리고 또 되돌아올. ⓒ이훤

그리고 또 되돌아올. ⓒ이훤

몸도 마음도 쉽게 덜컹인다. 연이은 마감 탓에 비슷하게 느끼던 짝꿍에게 문자가 왔다. “분명한 건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리고 있다는 거야.” 고갤 들어 두산아트센터 건너편에 자리한 층층나무를 본다. 서른 살 넘어 보이는 나무의 몸이 위아래로 천천히 휜다. 길고 얇은 외로움처럼. 배가 지나간 강물처럼.

오월에는 적게 쓰고 많이 말했다. 연습실에서 매일 아홉 시간씩 보내는 동안 봄이 흘렀다. 연극이 올라갔다.

<엔들링스>는 서울에서 열일곱 번의 공연이 예정돼 있었다. 이제 다섯 차례만 남았다. 어떤 날엔 잘하고 싶은데 도무지 방법을 모르겠어서 빨리 끝나길 바랐다. 닷새 후면 무대가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울대가 뜨거워진다. 수백 시간씩 쌓은 공연은 어디로 흩어질까. 밟지 못하는 공간에 어떻게 다시 들어설 수 있을까.

작년쯤, 어쩌면 내가 반복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다. 글을 쓰며 열 시간씩 보냈기 때문이다. 그날 쓴 문장은 종이나 웹에 다양한 물성으로 남게 될 터였다. 책상의 시간은 어떤 식으로든 미래로 이어졌다.

연극 작업을 하며 그 믿음을 수정하고 있다. 이 반복 앞에 나는 무력함을 느낀다. 배우는 아는 장면으로 계속 돌아가는 자들이다. 같은 대사를 뱉고 같은 조명과 공간으로 돌아오지만 그 중심에 선 배우는 계속 갱신되어야 한다. 그리고 극이 끝나면 그 세계는 폐기된다.

익숙한 이야기를 어떻게 처음처럼 말하고 들을까. 사라질 걸 알면서, 이미 여러 번 도착한 미래 앞에 무슨 표정으로 서야 할까. 오래 되풀이할 질문을 손가락으로 움켜쥔 채 극장을 나선다.

이래은 연출가는 말했다. “사라지기 때문에 영원할 수도 있어요.” 맞다. 이 모든 것은 휘발되므로 각인된다. 극장까지 이동하고 무대의 인물과 연결되고 충돌하고 같이 일렁이는 경험은, 그 시간의 일부는 우리 안에 스민다. 그리고 흩어진다. 관객의 몸과 배우가 맞을 침묵 사이로.

사라질 무대를 살핀다. 쩌렁쩌렁 각자의 대사를 연습하는 동료들을 본다. 연극에 등장하는 세 섬의 거주민들-만재 아일랜드와 이어도를 오가는 해녀, 맨해튼의 무대감독과 극작가 부부-을 내 세계에 다시 초대한다. 다섯 번 더 반복될 예정이다. 누군가는 그 시간을 미래로 진입하는 어귀처럼 쓸 거다. 무대는 지도. 우리가 통과할 잠정적 사건의 증거다.

층층나무처럼 사람들이 천천히 구부러졌다가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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