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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민주당의 성평등 DNA

1987년 겨울, TV에서 대통령 후보의 연설 장면을 보다가 충격을 받은, 어린 내가 있었다. 김대중 후보가 “남녀차별을 없애겠다”고 말했다. 무슨 말인지 잠시 멍했다. 없애야 하고 없앨 수 있다고? 그걸 하자고? 아빠는 돈 벌고 엄마는 ‘집안일’ 하는 세계를 질문하기까지 시간이 더 걸렸지만 새로운 세계를 만난 듯한 짧은 순간은 잊히지 않았다.

지난달 민주당이 여성단체와 비공개로 만났다는 기사를 봤다. ‘공약이 부족해도 성평등 DNA가 있는 정당이니 기대를 접지 말아달라.’ 그 DNA가 있는데 성평등 공약을 숨기고 후퇴시킨다고? 염치도 없다는 생각을 하다가 어릴 적 기억이 스쳤다. 그 DNA, 어쩌면 있어서 문제가 더 고약해진 것은 아닐까.

지난달 27일 대선 후보 TV토론은 완전히 다른 충격을 안겼다. 여성이 동등한 시민이라 믿었다면 도저히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이 후보의 입에서 나왔다. 꼼짝없이 그 말에 두들겨 맞고 정신이 얼얼했다. 이준석은, 혐오와 차별을 없애야 할 것이 아닌 재생하고 전파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었다. 폭력에 노출된 시민들에게 우리는 굳건히 성평등 사회로 갈 것이라는 약속이 필요했다. 그것이 혐오에 대항하기 위한 출발선이기 때문이다. 이 TV토론 다음날 민주당은 여성가족부를 성평등가족부로 확대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민주당은 그런 공약을 낼 수 있는 정당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성평등을 숨기려던 정당이다. 지난달 22일 여성단체들에 확인시키고 발표하지 않던 공약을 TV토론 이후 여성 표를 주워 담아야겠다는 욕심에 슬그머니 꺼냈다. 민주당의 성평등은 더 나은 사회로 가자는 이정표가 아니라 여성과 남성 사이에서 득표를 저울질하는 말일 뿐이었다. ‘성평등은 모두를 위한 것’이라는 말을 민주당은 여성 편에 있지 않다고 해명할 때 쓴다. 문제는, 그래도 자신들은 성평등을 이룰 정당이라 믿는 데 있다. 그래서 잠시 숨기거나 미루는 것이 전략일 수 있다고 여긴다. 익숙한 장면 아닌가.

‘혐오 표현을 규제하겠다.’ 최근 민주당 의원들이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가 철회했다. 그런데 “법안 자체는 정보통신망 건전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니 ‘성적 지향’을 삭제해 다시 발의하겠단다. 18년째다. 법안에서 ‘성적 지향’을 삭제하는 일이 성소수자는 법의 보호를 받지 않을 것이라는 메시지가 됨을 모르는 듯하다. 그러면서 진심으로 혐오와 차별에 맞서는 중이라 믿는 듯하다. ‘차별을 정당화·조장·강화’하는 표현을 규제하겠다면서 ‘차별을 정당화·조장·강화’하는 행동을 하는 걸 달리 이해할 방법이 없다.

긴 시간이 흐르며 민주당의 DNA는 스스로를 속이는 방향으로 진화한 듯하다. 시민들은 혐오 표현이나 차별을 없애달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평등한 공론장을 만들어 우리 스스로 세상을 바꿀 수 있게 하라는 것이다. 민주당은 평등한 공론장을 닫으며 표백된 공론장을 만들겠다고 한다. 시민들은 어떤 정체성을 존엄과 권리가 부정당해도 되는 이유로 만드는 이들에 맞서 대신 싸워달라 요구하지 않았다. 우리의 대항이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고 있음을 인정하고 동참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민주당은 페미니즘을 부정하며 성평등을 이루겠다고 한다. 잠시 숨길 뿐이라는, 나중에 할 것이라는, 어쩌다 시작된 변명이 자기복제를 거듭한 결과다.

차별을 보지 않고 차별을 없앨 수 있다고, 누군가를 밀어내며 평등에 이를 수 있다고, 굳게 믿은들 모두를 속일 수는 없다. 국회 최다 의석을 가지고 출범한 새 정부가 심화되는 혐오와 차별에 대한 책임을 피할 방법은 없다. 민주당에 성평등 DNA가 있었다면 1987년의 광장이 만든 것일 테다. 윤석열 파면 이후 그 DNA는 시대에 도태되지 않을 길을 찾을까? 수많은 사람들이 차별금지법부터 제정하라고 일러주고 있는데.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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