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쓰기
캐럴린 하일브런 지음 | 오수원 옮김
마티 | 206쪽 | 1만8000원
글로 남겨지는 것은 권력이다. 오늘자 신문을 펼쳐 각 문장의 주어만 살펴봐도 알 수 있다. 힘 있는 자들의 말은 주목받고 기록된다. 이는 기사나 논문, 비문학 같은 건조한 글뿐만 아니라 말랑말랑한 문학의 세계에서도 적용된다.
여성은 글로 남겨질 권리를 오랜 시간 박탈당해왔다. 어디까지 올라가야 할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박탈의 역사는 유구하다. 고조선을 떠올려볼까. 근엄한 단군왕검의 모습이 절로 그려진다. 고조선의 건국 이야기인 단군신화에서 여성 캐릭터는 웅녀 정도다.
![기록되지 못했던 여성의 삶…‘조연’이었던 여성을 ‘주연’으로 끌어내다 [플랫]](https://img.khan.co.kr/news/2025/06/10/news-p.v1.20250610.7fc1746bb54d40a3aa8ade9ab911fcf0_P1.jpg)
서양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헤라는 질투심이 많은 캐릭터로 표현된다. 반면 원인 제공자인 바람둥이 제우스는 힘 있고 멋진 모습에 무게가 실린다.
컬럼비아대학 영문학과의 최초 여성 종신교수이자 여성운동의 지도자였던 캐럴린 하일브런은 여성의 이 같은 ‘기록되지 못하는 삶’에 주목했다. 그는 여성의 삶을 해석하는 작업은 다 새로 만들거나 다시 말해야만 한다고 했다.
저자는 늘 조연이었던 여성을 주연으로 이끌어낸다. 여성 작가들의 분투와 변화를 찾아내고, 여성의 이야기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고민한다.
![기록되지 못했던 여성의 삶…‘조연’이었던 여성을 ‘주연’으로 끌어내다 [플랫]](https://img.khan.co.kr/news/2025/06/10/news-p.v1.20250610.baac62c2ff0647a99ff4b59a90aace07_P1.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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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서론을 제외하고 총 7장으로 구성된다. ‘결혼과 자살 외에 여성의 서사를 발굴하기’, ‘인기 없는 진취적인 늙은 여성’ 등 각 장의 제목만 봐도 흥미롭다. 5장 ‘친밀함의 역사, 우정의 연대기’를 읽으며 여성의 우정 서사가 그렇게도 없었는지 생각해보곤, 정말 ‘그렇게도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요즘 ‘여성스럽다’는 말은 젠더 감수성이 부족한 표현으로 여겨진다. 그 말이 내재한 여성에 대한 스테레오타입 때문이다. 그런데 우린 왜 ‘여성스럽다’는 말에 그러한 편견을 갖게 됐을까? 그간 읽어온 텍스트에 그 답이 있는 듯하다.
세상의 절반으로 존재했으나 이름이 붙여지지 않은 수많은 여성의 삶이 궁금해진다.
▼ 신주영 기자 jy@kha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