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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이승환 미국행의 결실

‘내게’와 ‘덩크슛’을 잇따라 히트시키며 전성기를 누리고 있던 1995년, 이승환은 별안간 미국행을 결정한다. 미국 대중음악에 대한 특별한 동경이나 해외 진출에 대한 욕심도 아니었다. 그냥 그는 자기 자신을 뛰어넘기로 한 것이다. 그건 음악적인 포부이자 인간적인 증명욕의 발로였다. 물론 천문학적인 돈을 써야 했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도전이었지만, 아니 오히려 위험부담이 큰 미국행이었지만 그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몇달 후, 그는 가요사의 게임 체인저가 될 작업을 들고 돌아왔다. 그건 바로 그의 네 번째 앨범이자 당시 한국 대중음악이 거둔 가장 위대한 사운드의 혁신인 <Human>이었다.

애초에 그는 ‘팝’ 음반을 만들 생각이 없었다. 조용필, 봄여름가을겨울, 이승철이 제각각 미국에서의 결과물을 갖고 왔지만 이승환에게 그건 한국인이 부른 ‘팝’ 음반에 가까웠다. 이승환은 음악 선진국의 연주력과 사운드 기술을 활용하되 어떻게 하면 가요와 접목될 수 있을지 고민했고, 그의 의도를 구현할 수 있는 적임자로 당대 미국 최고의 편곡자이자 그래미 수상자인 프로듀서 데이비드 캠벨을 택한다. 가요 최고의 트렌드세터였던 015B의 정석원을 공동 프로듀서로 낙점한 그는 LA의 레코드 플랜트로 향한다.

타이틀곡 ‘천일동안’은 이 앨범 최대의 성과이자 가요사에 유례가 없던 초거대 규모의 파워 발라드였다. 데이비드 포스터의 전담 기타리스트였던 클린 기타의 명수 마이클 톰슨, 필 콜린스의 명곡들을 모두 연주했던 베이시스트 릴랜드 스클라, 퀸시 존스가 사랑했던 드러머 존 로빈슨 등 세션의 면면은 화려함을 넘어 비현실적인 정도였다. 역시 가장 놀라운 건 사운드였다. 최고의 마스터링 엔지니어 버니 그런드먼이 매만진 유려한 사운드는 마이클 잭슨, 스틸리 댄 등의 음반에서 듣던 그 밀도 있는 소리에 못지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승환은 가요적인 호소력과 눈물을 잃지 않고 오히려 그 농도를 더 짙게 만드는 데 그들의 힘을 이용했다.

미국 레코딩 업계 최고 실력자들을 업은 이승환에게는 거칠 것이 없었다. <Human>의 한 곡 한 곡이 마치 새로운 한국 신기록들을 작성하는 순간들과 같았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었던 순도 높은 디스코 사운드 ‘악녀탄생’, 그때까지만 해도 국내에서는 상상 속 동물이었던 빅밴드 재즈를 완벽히 구현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시시함’, 밀도 있는 록 사운드에 대한 한을 푼 ‘멋있게 사는 거야’, 현 편곡의 정점을 보여준 ‘지금쯤 너에게’까지, 모든 순간이 경이로웠다. 흥미로운 건 사운드의 압도적인 홍수 속에서도 이승환이 끝까지 지키려고 했던 한국적인 ‘정서’는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Human>은 1990년대여서, 그리고 그 시절 한국의 뮤지션이어서 만들 수 있었던 앨범일 것이다.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시도하고 전시하는 ‘백화점’식 접근은 결국 1990년대 가요계 르네상스를 이끈 창작의 원동력이었고, 나아가 K팝이 가진 탈맥락적 무국적성의 근본정신이기도 했다. 여전히 미국 팝에 비해 20년 이상, 일본에 비해 10년 이상 뒤처져 있다고 믿었던 1990년대, 한국 대중음악은 이승환의 단독 드리블을 통해 적어도 몇년 이상의 차이를 좁히는 데 성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30년이 흘렀다. 이제 한국 대중음악은 K팝이라는 이름으로 미국 대중음악과 같은 시장에서 경쟁하기에 이르렀다. 가요가 진정한 의미에서 ‘컨템포러리’ 팝 음악이 된 것이다. 이승환이 <Human>을 통해 품었던, 어쩌면 소박한 열망의 나비효과는 아니었을까.

김영대 음악평론가

김영대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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