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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가 먼저인가, 사람이 먼저인가

철거가 예정된 나진전자월드 내부. 출입을 금한다는 표지 뒤로 건물이 텅텅 비어 있었다. 깨진 유리창 사이로 자전거 한 대가 보인다. ⓒ레나

철거가 예정된 나진전자월드 내부. 출입을 금한다는 표지 뒤로 건물이 텅텅 비어 있었다. 깨진 유리창 사이로 자전거 한 대가 보인다. ⓒ레나

“없는 사람 살기엔 서울이 제일이다.” 일이 있어 용산전자상가를 지나게 됐다. 다니는 사람도 없고 건물들은 다 닫혀 있었다. 스산한 느낌이 들어 잰걸음으로 걷다가 어릴 때 들었던 엄마의 말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서울이 최고라는.

엄마는 10대 시절 충청도 산골 마을에서 상경해 곧 여든이 되는 지금까지 살고 있다. 공부 잘하는 큰오빠를 뒷바라지하기 위해 자매가 손을 잡고 대처에 나와 공장에 취직한 것이다. 집안 기둥이라 믿었던 오빠의 등록금을 다 대고는 둘 다 서울 남자를 만나 서울에 정착했다. 돌아가신 이모도 그랬다. 어린 나에게 과자를 물려주며 사탕공장에서 사탕 껍질을 싸며 힘들었단 이야기를 늘어놓다가 그래도 서울에서 살아 좋다고 말하곤 했다.

서울이 좋아 고향에 잘 내려가지 않던 엄마 때문에,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지만 어릴 때 엄마나 이모가 서울을 왜 그렇게 좋아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의 삶은 겉으로나 안으로나 별로였다. 산동네에서 공용 화장실을 쓰면서 옥신각신하며 살던 이모는 재개발에 밀려 소액의 보상금과 빚을 낸 돈으로 더 꼭대기로 옮겨졌다. 그러다 자식들이 결혼하자 이모는 한탄하며 경기도로 옮겨갔다. 그러고도 주말이면 교회 핑계로 서울로 무조건 나오곤 했다.

반지하 월세를 전전하던 엄마는 이모에게 일자리 때문에라도 서울을 절대 떠나면 안 되는 거였다고 훈수를 뒀다. 서울은 가난한 이들에게 그토록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도시일까.

나는 대학 시절 디지털카메라를 사러 용산에 왔던 기억을 떠올렸다. 당시 다닥다닥 붙은 점포들 위로 형광등이 매섭게 빛나고 있었다. 그때의 화려했던 불빛들은 모두 꺼졌다. 재개발이 지연되면서 노쇠한 건물을 막아놓은 철판 뒤로 새롭게 지은 건물이 멀리서 반짝였다. 활기차게 호객을 하던 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얼굴 모를 이들의 그림자 뒤로 낡은 건물의 옥상과 망루, 그리고 무섭게 타오르던 불꽃이 떠오른다.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서울이라는 도시가 삼켜버린 욕망과 분노,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해 처절하게 살아야 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니 내가 서 있는 상가 주변이 싸늘하게 식은 주검같이 느껴졌다.

도시가 먼저인가, 사람이 먼저인가. 사람이 없는 도시를 도시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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