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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들의 귀물, 장아찌

새봄에 마련한 장아찌가 진가를 뽐낼 계절이 온다. 장아찌. 채소·과실·과채·나무의 어린순 등을 간장·된장·고추장에 박아 맛을 들였다가, 그대로 먹거나 따로 양념을 더해 오래 두고 먹는 반찬이다. 장아찌 한 입이 밥맛을 확 끌어올린다. ‘과실’이라면, 초피(열매)·살구·매실·감 등이 매력적인 장아찌의 재료로 이어지고 있다. 순과 잎은 아니 그럴까. 초피나무, 산초나무, 가죽나무, 엄나무 등의 순과 어린잎이 다 장아찌가 된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장아찌는 ‘장에 담근 지’라는 뜻의 ‘장앳디히’에서 온 말이라고 한다. ‘지’는 김치를 필두로 한 발효·숙성·저장 음식을 널리 가리키는 어휘다. 장아찌는 재료를 다디단 촛물에 빠뜨린 뒤에 장이나 양념을 조금 풀어 색깔만 입힌 음식이 아니다. 장과 재료가 어울려 충분히 맛이 들어야 한다. 짭조름함이 쨍하게 도드라져야 한다. 숙성으로 이룬 깊은 맛이 잇새에서 확 번져야 한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짜게 절여 오래 먹는 음식을 해왔다. 소금을 지나, 절임에 장을 쓰게 되면서는 그 풍미가 훨씬 다채로워진다. 이윽고 김치가 한 분야로 자리를 잡은 뒤로, 장아찌는 김치와는 다른 저만의 길을 걸어 오늘날에 이른다.

정학유의 ‘농가월령가’는 장아찌가 있는 풍경을 이렇게 노래했다. “소채(蔬菜) 과실 흔할 적에/ 저축함을 생각하여/ 박 호박고지 켜고/ 오이 가지 짜게 절여/ 겨울에 먹어 보소/ 귀물(貴物)이 아니 될까?” 타작마당의 점심에도 장아찌가 빠지지 않았다. “타작 점심 하오리다/ 황계(黃鷄) 백주(白酒) 부족하다/ 새우젓 계란찌개/ 상찬(上饌)으로 차려놓고/ 배춧국 무나물/ 고춧잎장아찌라.”

저축. 이 말이 눈에 콕 박힌다. 내 손에 식료품을 쥘 수 있을 때 저축하는 먹을거리가 장아찌였다. 한 해를 지나도록 먹을 만한, 김치와는 또 다른 고마운 반찬이 곧 장아찌였다.

조선 후기에 쓰인 조리서 <시의전서> 속 ‘고추장에 장아찌 박는 물종’도 재미나다. 장아찌감의 종류를 말한 것이다. 이 책에 따르면 더덕·송이·마른 송이·무·오이·가지·고추·감·물기를 짜낸 두부·전복·문어·말린 생선·수육·생강·마늘종·승검초 줄기가 다 장아찌감으로 좋단다. 아닌 게 아니라 1990년대의 호남 지역 민속조사 보고만 해도 소고기장아찌·고등어장아찌·미역귀장아찌·북어장아찌 등을 담고 있다. 훨씬 앞서 장계향은 <음식디미방>의 ‘마늘(장아찌) 담그는 법’을 이렇게 썼다.

“초가을에 마늘을 캐고, 해천초(초피)를 따고 마늘을 까서 천초를 세 알갱이씩 넣는다. 김치를 담그듯이 소금을 섞어 담가 두고, 기름진 고기를 먹을 때 섞어 먹으면 미묘하다.”

슬며시 웃음이 난다. 마늘만 해도 이미 그 향미가 찌를 듯 다가오는 재료인데, 따로 향신료까지 더해 마늘장아찌를 담갔다. 그렇게 담근 마늘장아찌가 기름진 고기와 어울린단다. ‘미묘하다’고 할 만큼. ‘농가월령가’에서 본 타작마당 점심밥에 어울린 장아찌며 고기에 곁들인 장아찌까지, 추구하는 미각·감각·일상은 그야말로 의구하지 않은가.

고영 음식문화연구자

고영 음식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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