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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닫힌 학교급식 교문을 열며

입력 2025.06.12 20:33

음식물 쓰레기통을 들고 엘리베이터를 타면 죄지은 사람처럼 움츠러든다. 먹는 일은 즐거워도 지지고 볶고 수챗구멍 닦는 일까지는 고역이다. 하물며 적게는 100명, 많게는 수천명의 식사를 책임지는 학교급식 현장의 신역은 얼마나 고되겠는가. 기피 업종이 되어버린 학교급식 종사자들의 고충에 잔반 처리도 한몫한다. 음식물 쓰레기 처리의 불쾌감도 있겠으나 멀쩡한 음식을 버릴 때 마음도 무겁다. 손은 많이 가건만 학생들이 젓가락을 잘 대지 않는 나물 반찬이나 생선 요리가 종종 그렇다. 좋아하지 않는다고 메뉴에서 빼어버릇하면 학교급식의 의의는 흩어진다. 학교급식은 고른 영양을 기본으로 밥, 국, 반찬 등 전통식의 골격을 갖추고 음식 경험을 넓히는 교육 행위이기 때문이다. 수학 싫다고 수학 과목을 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단체급식에는 배식대에 올라가지 않는 미배식 잔식, 즉 예비식이 있다. 밥 모자라면 라면 먹자는 집밥과 학교급식의 운영 원리는 다르다. 급식 인원에 맞춰 식재료를 발주하고 혹여 결식이 발생해서는 안 되므로 음식을 바특하게 할 수 없다. 그러나 시험 기간에 급식을 거르거나 결석생이 많을 때는 예비식이 남는다. 코로나19 사태 때도 급작스레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되며 배식대에 오르지 못한 귀한 음식들이 그대로 버려지기도 했다. 가정에서는 장바구니에 담기 힘든 최고-국내산·친환경- 식재료들로 만든 음식이 말이다.

반면 학교 밖에는 끼니가 절실한 사람이 많다. 복지관에서 제공하는 무료급식이나 도시락에 의지해야 하는 저소득 노인들이 그렇다. 요즘처럼 불경기에는 노인들만 식사 걱정을 하는 것이 아니다. 1인 가구 청년들도 먹거리 취약계층인 경우가 많다. 노인정에서 이루어지는 공동급식도 빠듯한 예산 탓에 맛과 영양, 전문성이 학교급식에 비할 수 없다. 그렇다면 조리 전문가들이 만든 청결하고 영양을 갖춘 급식 예비식이 공급된다면 어떨까. 이미 미국·프랑스·일본 등에서도 급식 예비식 기부 프로그램을 운영해왔다. 하지만 한식은 젖은 음식이 많아 학교 밖으로 나가 상하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뜻이 아무리 좋아도 괜한 일을 벌여 덤터기를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럴 때 송곳처럼 먼저 뚫고 나간 주체들이 있다. 시흥시학교급식지원센터가 시작하고 뒤이어 안양·군포·의왕·과천 공동급식지원센터가 학교, 지역 복지관 등과 연계해 예비식 기부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식중독 같은 사고 책임은 급식센터와 교육청이 지기로 하면서 부담을 덜었다. 배송은 학교에 콜드체인으로 식재료를 공급하는 전문 배송업체가 맡으니 본래 상할 염려는 거의 없었다. 배송된 음식을 복지관 직원과 봉사자들이 세척 및 회수 가능한 용기에 보기 좋게 담아 대상자들에게 제공한다. 음식만 건네는 것이 아니라 영양 및 위생 교육과 더불어 안부도 챙긴다. 이 사업은 잔반 저감사업의 일환이기도 했지만 비단 환경·경제적 효과만 불러온 것이 아니다. 제공받은 주민들의 만족도가 매번 별 다섯 개를 찍으며, 고맙다는 인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에 급식 관계자들이 갖게 된 뿌듯함은 부수적 효과를 넘어 가장 큰 성과로 꼽고 있다.

학령인구가 줄어 학교급식 유지의 최저선인 2000명도 채 안 되는 농촌 지자체도 많다. 식사를 챙기기 어려운 고령 주민은 점점 더 늘어난다. 따라서 저출생·고령화 시대에 학생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학교급식을 넘어 먹거리 취약계층을 돌보는 공공급식으로의 전환은 절실하다. 이재명 대통령도 지역에 기반한 ‘먹거리 통합돌봄’을 약속했다. 급식 예비식 기부사업도 하나의 사례다. 농촌만이라도 학교가 공공급식의 거점이 되는 것도 방안이다. 다만 번아웃 상태의 급식 현장에 열정까지 강제할 수는 없다. 사람과 돈, 관심의 세 박자가 맞아떨어져야 가능한 일이다. 먼저 현장을 돌보고 그다음에 이웃을 돌보는 것이 순리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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