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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에 완벽은 없다

[반복과 누적]예술에 완벽은 없다

뮤지션을 평할 때 관성적으로 따라붙는 수식이 몇 있다. 그중 하나가 ‘지독한 완벽주의’다. 곱씹어보면 예술에 완벽은 존재할 수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뮤지션의 강박에 가까운 태도를 완벽주의라며 칭송한다. 완벽주의는 이를테면 거대한 이불이다. 각각의 의미 있는 요소를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양 뒤덮어버릴 위험이 없지 않다.

비판하려는 게 아니다. 어차피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에는 약간의 수사적인 인플레이션이 습관적으로 따라붙는다. 쉽게 말해 과장법이다. 언뜻 보기에 과장법은 매력적이다. 글의 전압을 단번에 올려줄 것만 같은 느낌을 준다. 게다가 평론가란 과장하기를 좋아하는 족속이다. 여러분도 “시대를 초월한 걸작” “영원불멸의 클래식” 등의 최상급 찬사를 어디선가 본 적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경계해야 한다. 최상급이 주는 유혹을 견뎌야 한다. 뮤지션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 나는 음악가에게, 더 나아가 예술가에게 요구되는 태도는 완벽주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보다는 ‘명확한 방향성’이야말로 뮤지션이 갖춰야 할 첫 번째 덕목이다. 백현진의 말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예술에 완성은 없어요. 어느 순간 그냥 손을 떼는 거죠.” 그렇다. 최선을 다하되 완벽주의에 함몰되어서는 안 된다. 자신이 산파 역할을 한 작품을 축복하고, 올바른 타이밍에 세상에 내보낼 줄 아는 감각이 되레 중요하다.

비틀스가 그랬고, 레드 제플린이 그랬다. 신중현이 그랬고, 조용필이 그랬다. 작년과 올해로 한정하면, 메인스트림에서는 백현의 <에센스 오브 레버리(Essence of Reverie)>나 제니의 <루비(Ruby)>, 인디에서는 단편선 순간들의 <음악만세>나 포크 뮤지션 김활성의 <남은 숲> 등을 추천한다.

모두 쇼펜하우어(사진)의 다음 가르침을 음악으로 실천한 앨범이다. “좋은 문체의 사실상 유일한 조건은 할 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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