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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 전의 호소

입력 2025.06.15 20:57

지난해 12월11일, 부산 서면에서 열린 ‘윤석열 탄핵 촉구 집회’에서 시민 A씨가 자유발언을 위해 단상에 올랐다. A씨는 자신을 ‘소위 말하는 술집여자’라고 소개하며 발언을 시작했다. 순식간에 이목이 쏠렸고 이어지는 발언은 좌중을 사로잡았다. 그는 윤석열 당시 대통령의 탄핵을 촉구하면서도 탄핵을 완성이나 끝이 아닌 하나의 ‘고비’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고비를 무사히 넘기고 난 다음에도 계속해서 정치와 우리 주변의 소외된 시민들에게 관심을 가지는 일”을 해달라고 동료 시민들에게 당부했다. 당시는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기도 전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A씨는 일찌감치 탄핵 너머를 그렸고 그의 호소는 SNS를 타고 회자했다. 이후 국회는 지난해 12월14일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가결했고, 헌법재판소는 지난 4월4일 파면을 선고했다. 그리고 조기대선을 거쳐 지난 6월4일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다.

6개월여 전 부산 서면에 울려 퍼진 A씨의 발언 전문을 얼마 전 다시 찾아 읽었다. 새 정부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이 사회를 가득 채우고 있는 지금, 그의 호소가 다시 떠올랐다. 역시나 다시 읽어보길 잘했다. 아래는 A씨 발언의 일부다.

“제가 오늘 이곳에 선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여러분께 한 가지를 간곡히 부탁드리고 싶어서입니다. 그건 우리가 이 고비를 무사히 넘기고 난 다음에도 계속해서 정치와 우리 주변의 소외된 시민들에게 관심을 가지는 일입니다. 우리는 박근혜를 탄핵시켰고 또 윤석열을 탄핵시킬 것이지만 동시에 우리 국민의 절반은 박근혜와 윤석열을 뽑은 사람들입니다.(중략) 우리는 우경화가 가속되는 시대 한복판에 서 있습니다. 이 거대한 흐름을 막지 못한다면 또 다른 윤석열이, 또 다른 박근혜가, 또 다른 전두환과 박정희가 우리의 민주주의를 위협할 것입니다. 그러니 다시 한번 부탁드립니다. 우리 주변의 소외된 이들에게 관심을 주십시오. 더불어 민주주의에 관심을 가져주십시오. 오로지 여러분의 관심만이 약자들을 살려낼 수 있습니다.”

“쿠팡에서는 노동자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파주 용주골에선 재개발의 명목으로 창녀들의 삶의 터전이 파괴당하고 있습니다. 동덕여대에서는 대학 민주주의가 위협을 받고 있고, 서울 지하철에는 여전히 장애인의 이동할 권리가 보장되고 있지 않으며, 여성들을 향한 데이트폭력이, 성소수자들을 위한 차별금지법이, 이주노동자의 아이들이 받는 차별이, 그리고 전라도를 향한 지역혐오가, 이 모든 것들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민주주의는 여전히 완벽하지 못한 것입니다.”

발언의 출처를 모르고 보면 누군가 지난 3일 대통령 선거를 마치고 쓴 글로 여길 것 같다. A씨는 탄핵이라는, 6개월여 전에는 가장 절박했던 정치적 현안을 넘어 그 이후의 과제를 일찌감치 제시했다. 탄핵을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점으로 규정했다. 정치적 승패에 매몰되지 않고 민주주의의 더 근본적인 문제를 직시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A씨는 한국 사회 분열의 원인을 “시민 교육의 부재와 그들이 소속될 적절한 공동체의 부재”에서 찾았다. 새 정부가 정책 추진과 함께 시민사회의 건강성 회복과 공동체 복원이라는 구조적 과제에도 주목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또 다른 윤석열’의 등장을 막는 길은 결국 성숙한 시민 의식의 토양을 다시 다지는 데 있다는 그의 당부는 그래서 지금 더 귀담아들어야 한다.

그가 지적했던 우리 사회의 ‘미완의 과제들’은 6개월이 지난 지금도 대부분 현재진행형이다. 노동자의 죽음, 성매매 여성의 생존권, 대학 민주주의, 장애인의 이동권, 성소수자 차별금지법 부재, 지역혐오 등 그가 나열한 ‘미완의 민주주의’ 목록은 이제 막 출범한 이재명 정부가 해결해야 할 숙제다.

경제성장률이나 외교적 성과 같은 거대 지표만 중요한 게 아니다. 6개월 전 그가 호명했던 소외된 이들의 삶에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느냐가 앞으로 이재명 정부의 성패를 가를 핵심이다.

그는 발언 끝에 이렇게 당부했다. “그러니 여러분께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우리가 이 고비를 무사히 넘기는 데 성공하더라도, 이것이 끝이고, 해결이고, 완성이라고 여기지 말아주십시오. 편안한 마음으로 두 발 뻗고 잠자리에 들지 말아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당시 광장에 모인 동료 시민뿐만 아니라 6개월 뒤 탄생할 새 정부를 향한 호소이기도 했다. 고비는 이제 시작이다.

홍진수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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