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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쉬운 길의 함정

문제를 발견하고 확인하는 것은 해결의 시작이다. 이번 선거를 통해 징후로만 얘기되던 우리 사회의 균열이 어디에 어떻게 존재하는지 더 잘 드러난 것 같다. 이제 젠더와 세대에 따라 주요한 사회 문제에 관한 생각과 해결 방향에 대한 선호가 다르다는 것이 드러났다. 그런데 여기에는 생각의 차이로만 해석할 수 없는 오해와 불신도 스며들어 있다.

예컨대 20대 중 꽤 많은 수가 연금개혁에 대해 젊은 세대들은 신연금으로 분리시키고 현 국민연금은 구연금으로 만들겠다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편 정치인에게 표를 던졌다고 한다. 물론 그 기획은 실현 가능성도 낮고 불안정한 청년들을 계속 노년 빈곤층으로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국민연금은 사람들이 더 오래 안정적으로 일을 할 수 있도록 노동권이 보장되고, 연금재정 기반과 재정 조달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꿀 때 문제 해결 가능성이 열린다. 그러나 이런 복잡한 이야기는 도외시됐다. 각 세대는 서로 의존하면서 생애 전체에 걸쳐 서로 역할을 바꿔가며 부양·피부양 관계를 이어간다는 것도 간과되었다.

흥미롭게도 그 정치인은 건강보험에 대해서도, 몸이 아파 병원에 많이 가는 사람들, 장애인, 노년층, 복합만성질환자들을 재정 악화 원인으로 탓하고 이들에 대한 건강보험 혜택을 줄이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그는 한국의 시장 중심 의료 공급 구조가 야기하는 진짜 문제는 건드리지 않았다. 또한 이주민이 건강보험 비용을 유발한다고 공격했지만 실제로 이들은 병원 이용을 제대로 못해 건강보험이 흑자를 보고 있다는 것에도 침묵했다.

복지정치 측면에서 이번 선거는 기억에 남을 만하다. 몇몇 정치인들은 한국 사회보장의 문제를 왜곡하고 단편적으로 부각해 사람들을 분열시키고 정치적 이득을 얻고자 했다. 노인과 이주민에 대한 공격도 도를 넘었다. 이들은 특히 청년들의 오해와 불신을 부추겨 전례 없이 세대 균열을 확대하려 했다.

사회개혁을 둘러싼 이러한 분할의 정치 기획은 이번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것 같다. 노인, 장애인, 이주민 등 시민을 쪼개고 서로 공격하게 만드는 것은 이미 여러 극우 정당들이 써먹은 전략이다. 선거에서 꽤 잘 작동한다. 미움이란 본질적인 감정을 건드릴 뿐만 아니라, 아무리 부당해도 그 대상이 뚜렷하니 이해하기 쉽다. 초고령화 대응도 돈 문제로 단순화시켜 버리니 간단하다. 반대로 사연금 시장과 공적연금의 관계나 연금재정 구조의 변화, 의료 공급의 공공성 강화와 같은 어젠다는 복잡하다. 정치와 언론은 이를 다루지 않는다.

선거는 끝났지만 이런 단편적인 논리가 앞으로 사회개혁의 발목을 잡을까봐 걱정스럽다. 초고령사회에서 국민연금과 건강보험 개혁은 풀기 어려운 과제다. 그러나 복잡한 해법을 포기하고, 돈이 드니 보장을 줄이자는 쉬운 해법만 찾는다면 결국 보통 사람들의 건강과 노후보장은 더욱 지키기 어려워질 터이다.

노동시간 단축이나 정년 연장도 마찬가지다. 일부에선 중소기업과 대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의 격차를 내세워 이런 변화의 발목을 잡으려 한다. 이는 오히려 지금 구조를 그대로 둔 채 한두 가지 개혁을 얹는다는 발상 자체를 바꾸고 근본적인 개혁으로 더 깊이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분업과 수익 배분, 하청에 재하청을 거듭하는 원청기업과 하청기업의 계약 방식과 수익 구조, 특히 사내외 하청노동자에 대한 착취와 차별 구조를 바꾸는 것 등이 포함된다.

우리는 인공지능과 같은 복잡한 문제를 더 잘 이해하게 만드는 수단들을 갖추었지만, 일부 정치인과 언론은 시민들이 단편적으로 생각하고 불신하도록 부추긴다. 보통 사람들이 좋은 삶을 누리는 길은 사실 멀고 험하다. 그러니 경솔한 혐오의 논리, 단순한 축소론을 의심하고 이에 저항할 필요가 있다. 변화를 위해서는 어렵고 먼 길을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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