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넷플릭스 장편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사자보이즈. 넷플릭스 제공
한국 저승사자 복장으로 갓을 쓴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이 노래를 부르며 춤춘다. ‘내 황홀에 취해, you can't look away(눈을 떼지 못해).’ 강렬한 비트에 영어와 한국어가 섞인 가사, 대형을 맞춘 일사불란한 칼군무는 기시감이 든다. ‘이거 K팝인데?’ 갓 아래로 보이는 형형색색의 머리카락과 화려한 무대 효과 연출에 확신이 더해진다. 이건 한국 아이돌 무대 영상이 아닐 수 없다고.
지난 주말 5인조 저승사자 보이그룹 ‘사자보이즈’의 ‘your idol’ 영상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애니메이션 캐릭터인데도 K팝 아이돌하면 떠오르는 노래·안무·캐릭터 디자인에 손색이 없었다. 이들이 지난 20일 넷플릭스에 공개된 오리지널 장편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등장하는 ‘빌런’(적)이라는 것이 알려지며 영화의 화제성도 동반 상승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악귀로부터 인간 세상을 지키는 K팝 3인조 여자 아이돌 ‘헌트릭스’를 주인공으로 한 애니메이션이다. 헌트릭스는 악령들이 이 세계로 넘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결계인 ‘혼문’을 노래의 힘으로 지킨다. 화제의 사자보이즈는 헌트릭스의 팬을 뺏어 기세를 꺾기 위해 마왕 ‘귀마’가 인간 세상에 보낸 보이그룹이다.

넷플릭스 장편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서 악귀와 맞서 싸우는 3인조 걸그룹 헌트릭스. 넷플릭스 제공
의외로 이야기가 탄탄하다. 삼인삼색인 헌트릭스의 루미·미라·조이는 함께 있을 때 행복하지만, 정작 ‘강해 보여야 한다’는 생각으로 각자의 콤플렉스는 터놓고 얘기하지 못하는 사이다. 배우 안효섭이 목소리를 연기한 사자보이즈의 진우는 그 틈을 파고들어 셋의 팀워크를 뒤흔들어 놓는다.
한국산이 아닌 미국 애니메이션이다.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몬스터 호텔>의 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이 제작했다. 한국계 캐나다 감독 매기 강과 크리스 아펠한스가 연출을 맡았다.
포브스와의 인터뷰에 따르면, 캐나다에서 자란 유년기, H.O.T.와 서태지 등 1세대 아이돌을 좋아했다는 강 감독은 캐릭터를 만들 때 현재 활동하는 K팝 아이돌을 두루 참고했다고 한다. 실제 K팝 씬의 테디, 24, ido 등 더블랙레이블 프로듀서들이 음악에, 리정 등이 안무 창작에 참여하며 곡과 무대의 완성도를 높였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 속 사자보이즈의 ‘소다팝’ 활동 모습. 넷플릭스 제공
제작진은 K팝 산업에 대한 방대한 조사를 통해 헌트릭스와 사자보이즈를 더 있을 법하게 그려냈다. 스타는 팬들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고, 그에 열광하는 팬들은 응원봉을 들고 콘서트를 찾는다. 새로운 음원·음반을 내는 것을 ‘컴백’이라 부르며 팬사인회와 예능 출연 등 정형화된 일정을 소화하는 모습도 우리가 익히 봐온 K팝 가수들의 모습이다.
한국적인 요소는 이뿐만이 아니다. 현대의 서울을 배경으로, 악귀의 모습은 한국 민담과 고전설화 속 이미지를 가져왔다. 도깨비·저승사자·(눈 세 개 달린) 까치 등이 등장하며 특히 민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호랑이 ‘더피’는 귀여운 생김새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 속 호랑이 악귀 ‘더피’와 헌트릭스 멤버 ‘루미’. 넷플릭스 제공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공개 직후 전 세계적 흥행을 거뒀다. 온라인 콘텐츠 집계 사이트 플릭스 패트롤에 따르면, 21∼22일 이틀간 글로벌 시청 순위 1위에 올랐다. 26개국에서 넷플릭스 영화 부문 1위(22일 기준)를 기록했다.
한국에서는 아직 영화 부문 2위로, 한국 소재 콘텐츠에 대한 반응이 해외에서 더 빠르게 나타났다는 것에 주목할 만하다. 서울 명문 기숙학교를 배경으로 한 넷플릭스 로맨스코미디 드라마 <엑스 오, 키티>가 한국보다는 해외에서 흥행했던 것처럼, ‘K-문화’를 살린 콘텐츠가 오히려 외국인들에게 더 소구하는 현상이 지속하고 있다.
한국이라는 공간적 배경이 첨단 도시의 모습과 동양적 전통미를 동시에 보여줄 수 있다는 데에서 해외 창작자·시청자들에게 긍정적으로 다가간다는 분석도 나온다. 최근 미국 뉴욕 토니어워즈에서 6관왕을 수상한 한국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이 브로드웨이 버전에서 ‘서울’과 ‘제주’ 등 한국적 요소를 유지한 것도 작품에 신선함을 더하는 요소로 꼽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