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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이름이 없는 작업복

입력 2025.06.23 20:48

“제가 입고 있는 옷은 저희 회사의 작업복입니다. 우리는 작업복에 회사 이름을 새기지 않습니다. 언제 또 회사가 바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태안화력발전소 정비 업무를 하는 한전KPS 하청노동자 정철희씨가 지난 19일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외친 말이다. 불법파견 소송 최후변론일이었다. 정씨는 16년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했는데, 사장은 15번 바뀌었다. 같은 발전소에서 똑같은 일을 했지만, 매년 다른 이름의 회사와 근로계약서를 쓰고 신입 직원이 됐다. 16년 동안 늘지 않는 연차휴가처럼, 경력도 처우도 바뀌지 않았다.

10여명 규모의 2차 하청 사장들은 1년 동안 인건비를 떼먹고 떠난다. 원청인 서부발전이 위탁업체인 한전KPS에 주는 직접노무비는 2021년 기준 1인당 평균 연 1억1000만원이었다. 여기서 한전KPS가 약 3000만원을 떼고, 2차 하청에 7100만원을 노무비로 준다. 2차 하청업체 사장은 약 2200만원을 떼고, 노동자에게 4900만원을 줬다. 6월2일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선반 작업을 하다 기계에 끼여 사망한 김충현도 한전KPS 하청업체 한국파워O&M 소속이었다. 최근 서부발전이 한전KPS에 준 노무관리비는 1인당 평균 연 1억6000만원이었고, 김충현의 마지막 월급은 420만원이었다.

일은 한전KPS가 시켰다. 김충현의 휴대폰에서는 한전KPS 직원이 카톡으로 작업 지시를 한 증거들이 나왔다. 김충현은 한전KPS 직원에게 절차대로 한국파워O&M 소장이 자신에게 작업 지시를 하게 해달라고 부탁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한국파워O&M 소장은 김충현이 하는 업무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직원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몰랐던 한국파워O&M이 관심을 가진 건, 한전KPS 출신을 부사장으로 두는 일이었다. 원청은 노동자에 대한 사용자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형식상 하도급 계약을 맺지만, 효율적으로 일하기 위해 하청노동자를 직접 지휘·감독해야 하는 ‘하청의 딜레마’를 마주한다. 우리는 이를 불법파견이라 부른다.

하도급 계약서로 원청과 하청 노동자를 떼어놓을 수는 있지만, 함께 일하는 동료들 사이를 가를 수는 없었다. 김충현은 한전KPS 직원에게 요청받은 물건을 주면서 감기약도 함께 건넸다. 일부 한전KPS 직원들은 고인을 ‘선배님’이라고 불렀다.

노동자의 생명 안전에 대한 책임을 원청에 지우기 위해 정규직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는 정규직 직원을 새로 뽑는 일이 아니라, 불법을 바로잡는 일이다.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일하다 죽지 않는 일터를 만들기 위해 권한과 능력이 있는 자에게 책임을 지우는 일이다. 사회적으로도 이익이다. 2차 하청노동자들은 한전KPS 정규직 신입 직원에 대한 현장교육까지 담당할 정도로 검증된 숙련노동자다. 중간에서 돈을 갈취하는 소수 사장만 없애면, 추가적인 비용 없이 숙련노동자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다.

정부가 6년 전 김용균과의 약속을 지켰다면, 사법부의 시계가 조금만 빨랐다면, 김충현은 한전KPS 로고가 새겨진 작업복을 입고 오늘도 출근할 수 있었다. 그의 동료들은 ‘단결투쟁’이 새겨진 조끼를 입었다. 이제 우리 사회는 생명 안전의 책임을 원청에 새기는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박정훈 민주노총 공공운수 노조 부위원장

박정훈 민주노총 공공운수 노조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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