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참으로 신비스럽고 경이롭다. 그 속에는 질서와 자유로움이 어우러져 우리가 평소에 쓰면서도 새롭게 느껴질 때가 많다. 이러한 언어의 신비는 특히 색깔을 표현하는 방식에서 두드러진다.
흔히 ‘빨갛다’ ‘까맣다’는 사물의 외양을 묘사하는 데 쓰인다. 잘 익은 빨간 사과나 숯처럼 까만 연기를 떠올릴 수 있다. 우리말은 이처럼 대상을 설명하는 말이 대상을 꾸며주는 형태로 변하며 더욱 풍부해진다. 가령 ‘사과가 빨갛다’가 ‘빨간 사과’로, ‘연기가 까맣다’가 ‘까만 연기’가 되는 식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러한 규칙이 언제나 그대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새빨간 거짓말’을 ‘거짓말이 새빨갛다’로 바꾸면 어색하거나 틀린 문장이 된다. 이는 ‘새빨간’이 거짓말의 실제 색깔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그 거짓말이 터무니없다는 점을 강조하는 비유적 의미로 굳어졌기 때문이다. 이처럼 언어에는 반복적 사용과 문화적 맥락을 통해 특정 형태로 굳어진 관용 표현이 많다. ‘새빨간 거짓말’은 이미 하나의 의미 단위로 자리 잡아 일반적인 형용사-명사 결합 규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이는 색채어가 본래의 색깔을 넘어 때로는 특정한 형태로만 깊은 의미를 전달하는 언어적 현상을 보여준다.
색채어가 비유적으로 확장되는 데에는 우리 문화와 심리가 깊이 작용한다. 빨강은 불의 강렬함, 검정은 어둠과 망각을 상징하는 등 오방색 전통이 우리말 곳곳에 녹아 있다. 이것은 단순히 시각적인 정보를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의 경험과 감정, 심리 상태까지 표현하는 언어적 장치가 된다. 얼굴이 ‘빨개졌다’고 하면 부끄러움이나 분노를, ‘하얀 마음’은 순수함을, ‘하얗게 질렸다’는 극도의 놀람이나 두려움을, ‘검은 속’은 악한 마음을 떠올리게 한다.
이렇듯 색채어는 단순한 꾸밈이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인지하고 해석하며 감정을 교류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매개체다. 색은 눈에 보이는 현상이지만 우리말에서는 마음과 삶을 비추는 창이 되어 때로는 말보다 더 깊은 감정을 진솔하게 전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