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법관대표회의 의장인 김예영 서울남부지법 부장판사가 지난달 26일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사법연수원에서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개회 선언을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전국 판사들의 대표회의체인 전국법관회의(법관회의)가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대법원판결 등으로 촉발된 논란을 30일 논의했으나 의견을 모으지 못했다. 사법신뢰, 재판 독립 등 주요 안건이 모두 부결됐다.
법관회의는 이날 “회의에서 5개 의안에 대해 치열하게 논의했으나 법관대표 간 의견이 갈리면서 어느 안건도 의결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날 회의는 오전 10시부터 2시간가량 온라인으로 진행됐다. 법관대표 126명 중 90명이 참석했다.
이날 상정된 안건은 총 5개인데 의제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뉘었다. ‘이 대통령 상고심 판결에 대한 유감 표명’ ‘정치권의 재판 독립 침해 행위 규탄’ 등이다. ‘법관회의는 이번 대법원판결로 초래된 상황을 엄중히 인식하고 공정 재판을 위해 노력한다’는 안건은 가장 많은 찬성표(29명)를 받았으나 의결 정족수(46명)에 한참 못 미쳤다. 반대가 57명이나 나왔다. ‘재판독립 침해 가능성에 깊이 우려한다’는 안건은 가장 적은 찬성표(14명)를 받았다.
법관회의 관계자는 “사법 신뢰·재판독립 침해 우려에 대해 의견표명이 필요하다고 본 법관대표들과, 진행 중인 사건의 판결에 대한 법관들의 집단적인 의견 표명은 자제해야 한다는 법관대표 간 의견이 갈렸다”고 설명했다.
앞서 법관회의는 21대 대선을 일주일여 앞둔 지난달 26일 1차 임시회를 열었는데 “법관회의에서 입장을 표명하는 것이 선거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나오면서 결론없이 마쳤다. 이어 대선을 마치고 열린 이날 회의에서도 의견을 모으지 못했다.
법조계에서는 법관회의에서 안건이 가결되고 입장을 내는 것이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일찌감치 나왔다. 회의 소집 계기가 된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한 만큼 법관회의가 특정한 견해를 밝히는 게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 많았다. 최근 정치권이 대법관 증원 등 사법개혁에서 속도를 조절하고 있는 상황도 안건 부결에 영향을 미친 건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 판결 이후 발생한 논란들이 법관회의를 열 만큼 시급하고 중대한 문제인지에 대해서 갑론을박이 일기도 했다. 일부 판사는 “즉각 법관회의를 열어 조희대 대법원장을 사퇴시켜야 한다”는 글을 법원 내부망에 게시했으나, 법관회의가 현장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회의 개최를 강행한다는 비판도 나왔다.
서울의 한 부장판사는 “법관회의가 사법 제도가 아닌 법원 판결에 대해, 그것도 진행 중인 사건에 대해 회의를 연다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라며 “뚜렷한 의견이 나올 것으로는 기대하지 않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날 법관회의에서는 ‘재판제도 분과위원회’와 ‘법관인사제도 분과위원회’가 새로 구성됐다. 법관회의 관계자는 “분과 소관 사항에 대해 자체적으로 후속 논의를 해 오는 12월 하반기 정기회의에서 사법 행정과 법관 독립 관련 사안에 대해 의견을 표명하거나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