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미 흑자 규모·수출 품목
지정학적 조건 대부분 유사
미, 일 협상 ‘본보기’로 맹공
유예 연장, 쉽지 않을 전망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강도 높은 ‘일본 저격’에 미·일 협상이 중대 위기를 맞으면서 한국 통상당국에도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대미 흑자 규모, 자동차 등 주요 대미 수출품목, 지정학적 여건이 유사한데 협상에 먼저 나섰던 일본이 난타를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초 통상당국 안팎에서 한국은 어렵지 않게 ‘상호관세 유예 연장’을 얻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에 “30~35%의 상호관세 부과” 가능성을 언급하자 기류가 달라지고 있다.
통상당국 관계자는 2일 “그간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은 상호관세 유예가 가능한 것처럼 얘기해왔는데, 지금 트럼프 대통령의 톤이 강하기 때문에 더 긴장하며 지켜보고 있다”면서 “7월9일(상호관세 유예 종료일) 이후 상황이 어떻게 될지 예측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부의 위기감은 ‘실무진과의 대화’를 토대로 향후 협상 흐름을 예측할 수 없는 트럼프 행정부의 특성과 관련이 있다. 지난달 11일 베선트 장관은 “주요 교역국 중 협상을 성실히 진행하는 국가에 대해서는 상호관세 유예 기한을 연장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당국 역시 협상 테이블에서 이 같은 ‘암시’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이 지난달 방미해 30여차례에 이르는 고위급 회동을 이어가며 ‘성실 협상’ 태도를 보이려 노력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0일과 지난 1일 연이어 “(협상 기간을) 연장할 생각은 없다. 많은 나라에 (상호관세 통보) 서한을 보낼 예정”이라고 발언하면서 ‘기대’에 찬물을 끼얹었다.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과 처지가 비슷한 일본을 ‘본보기’로 삼고 고관세 부과를 압박 중인 것도 당국엔 부담거리다. 미국과 가장 적극적으로 협상한 일본은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 옥수수·대두, 반도체 수입 확대 등 카드를 쏟아냈으나 돌아온 것은 “그들은 버릇이 나쁘다”(트럼프 대통령)는 맹공이었다.
일본이 최대 수출품목인 자동차 품목관세 인하(25%→10%)를 집요하게 요구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끝내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산업통상자원부 고위 관계자는 “미국은 핵심동맹인 일본의 경우 손쉽게 협상 성과를 낼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 기대가 어그러진 것 같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한국도 일본처럼 높은 관세 압박을 받거나 이미 예고된 상호관세(25%)가 재유예 없이 그대로 적용될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한국에 관세 통보 서한을 보내 상호관세를 되살렸다가 협상 진행 상황을 보면서 다시 유예하는 등 다양한 시나리오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한국의 경우 그간 리더십 공백기가 있었기 때문에 일본처럼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높지는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장 원장은 “미국이 원하는 조선업 협력 등 일본과 차별화된 제안을 얼마나 하는지가 향후 협상 성패의 핵심이 될 것 같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감정 분출’에 동요해선 안 된다는 조언도 나왔다. 김흥종 전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고려대 특임교수)은 “많은 국가들이 일본과 미국의 협상 사례를 주시하고 있다는 걸 미국이 알고 ‘일본 때리기’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협상 시한이 다가오자 긴장감을 끌어올리기 위한 협상 전략”이라고 말했다. 김 원장은 “트럼프의 전략에 말려들지 말고 유사 입장국들의 협상 방향을 파악해 나가면서 차분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