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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실용주의를 바라며

입력 2025.07.03 21:12

[김태일의 좋은 정부 만들기]제대로 된 실용주의를 바라며

이재명 정부가 출범하고 한 달이 지난 지금, 국민의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다. 대선에서 이재명 대통령을 찍었던 사람뿐만 아니라 다른 후보를 찍었던 사람 중에도 상당수가 호의적이다. 가장 큰 이유는 대선 때 내세운 실용주의에 부합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취임 후 첫 외교·안보 대응에서 보수층이 안심할 만한 입장을 취한 것, 대통령실과 내각 인선에서 경험과 능력을 중시한 것 등이 그렇다. 물론 취임 이후 코스피 지수가 크게 상승한 것도 실용주의 이미지를 더 강하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본격적인 평가는 이제부터다. 상법 및 양곡관리법 개정, 노란봉투법, 정년 연장, 주 4.5일제 등 기업 또는 시장이 반기지 않을 정책들이 잔뜩 대기하고 있다. 이 정책들을 여하히 만들고 실행하느냐에 따라 이재명 정부의 실용주의가 판가름 날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일부 언론은 실용주의와 반기업 정책은 양립할 수 없다면서 이들 정책의 대폭 수정을 주문하고 있다.

이쯤에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과연 행정, 즉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데 있어서 실용주의란 무엇을 의미하는가이다. 이를 나타내는 말로는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흑묘백묘론’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는 실용주의 정책의 한 측면만을 묘사한 것이다. 그보다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강조했던 ‘서생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이 실용주의 정책의 본질을 온전히 보여준다.

실용주의는 정책 부작용 줄일 해법도 고민

자기 이익만 챙기는 시정의 잡배라면 예리한 현실감각만으로 충분하겠다. 그러나 공익을 추구하는 정치·행정가는 다르다. 먼저 사회현상에 관한 치열한 문제의식을 지니고, 이를 푸는 과정에서 단단한 현실감각을 견지해야 한다. 같은 현상에 대한 문제의식은 보수와 진보가 다를 수 있다. 아니, 다른 게 당연하다. 철수가 보수를 지지하고 영희가 진보를 지지하는 까닭은, 동일한 사회문제라도 양쪽의 문제의식이 다르고 그래서 해법(정책)도 다르기 때문이다. 단, 어떤 해법이라도 실용주의를 따른다면 현실을 확고하게 담아야 한다.

이게 무슨 의미인지 예를 들어보자. 문재인 정부 때의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은 실용주의와는 딴판이다. 시장에서 결정되는 임금 수준을 인위적으로 높이려 해서가 아니다. 시장 임금이 너무 낮으니, 강제로라도 높여야 한다는 문제의식 자체는 진보 정부라면 당연히 가질 수 있다. 실용주의에서 벗어난 것은, 이를 구현하는 과정에서 현실감각이 결여됐기 때문이다. 급격한 임금 인상이 고용주에게 부담되고, 그러면 고용이 줄어든다는 것은 지극히 상식이다. 그런데 이를 외면한 채, 최저임금 인상이 오히려 고용을 늘릴 수 있다고 강변하면서 밀어붙였다. 윤석열 정부 때의 법인세 감면도 실용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친기업 성향의 보수 정부에서 법인세를 감면하는 것은 능히 예상할 수 있다. 또 법인세 감면은 기업 경쟁력 제고에 얼마라도 도움이 되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가뜩이나 적자재정으로 걱정인데, 덜컥 세금만 줄이고는 그로 인한 재정 악화 문제는 도외시했기에 전혀 실용주의가 아니다.

실용주의에 기반한 정책이란 현실을 직시해서 해당 정책이 가져올 긍정적인 효과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영향도 가감 없이 파악하는 것, 부정적인 면에도 불구하고 채택해야 한다면 이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 실행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발생한다면 정책 수정을 주저하지 않는 것이다.

실용주의에 입각했다면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고용주 부담과 이로 인한 고용 감소를 당연히 예측했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효과가 더 커서) 실행하기로 했다면, 부정적인 영향을 완화하는 대책을 병행했어야 한다. 실용주의를 따랐다면 법인세 감면에 따른 세수 감소의 보완 대책을 제시했어야 한다. 이들은 단점은 외면하고 장점만 보려 했기에, 부작용이 명백함에도 무시했기에 실용주의로는 실격이다.

정책에는 두 유형이 있다. 하나는 재정을 사용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민간의 행위를 규제하는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 노란봉투법, 주 4.5일제 등은 규제 정책이다. 규제 정책은 정부가 직접 돈을 쓰지는 않는다. 하지만 민간의 행위를 제약함으로써 이익을 보는 집단과 손해를 보는 집단이 생긴다. 실용주의에 입각한 규제 정책이라면, 해당 규제에 따른 민간의 이익과 손해를 균형 있게 고려하고,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하는 대책을 마련하며, 이해관계 집단과 충분히 소통하며 부작용이 생기면 즉각 대응하는 유연성을 지녀야 한다.

이 정부, 재정 확보 대책 마련이 성패 좌우

실용주의적 규제 정책이 갖춰야 할 조건은 재정 사용 정책에도 적용된다. 단, 여기에는 한 가지 조건이 추가된다. 재정건전성에 대한 고려이다. 이재명 정부는 2차 추경을 편성해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결정했다. 이는 실용주의인가, 아닌가. 침체한 내수를 끌어올리는 대책이 필요하기는 하다. 다양한 내수 진작 방안 중 전 국민 대상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선택한 것 자체만으로는 실용주의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 이 정책의 실용주의 여부는 그로 인한 재정 부담을 어찌하는가에 달려 있다.

이 대통령은 후보 시절 “나라가 빚을 지면 안 된다는 것은 무식한 소리”라고 했다. 맞는 측면이 있다. 국가는 개인과는 반대로, 경제가 어려우면 돈을 풀고 호황이면 돈줄을 조여야 한다. 그러나 국가든 개인이든 공통된 것도 있다. 너무 많은 빚은 살림살이를 휘청이게 한다는 점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100%가 넘는 국가채무를 지니고도 끄떡없는 나라들이 제법 된다. 우리의 국가채무는 이제 50% 수준이니 한참 동안 더 많은 빚을 져도 괜찮을까. 그렇지 않다. 우리는 개방경제 체제이며 기축통화국이 아니다. 이로 인해 우리의 경제는 국가채무에 민감하다. 아직은 괜찮다지만 여력이 크지 않다. 게다가 급속한 고령화로 인해 신규 재정사업을 벌이지 않아도 재정지출은 빠르게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강건한 재정 확보 대책이 없다면, 머지않은 장래에 나라 살림이 크게 힘들어진다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그렇다면 실용주의 정부가 해야 할 일도 명명백백하다. 재정학자 시각으로 보자면, 뭐니 뭐니 해도 이재명 정부 실용주의의 성패는 재정 확보 대책 마련에 달려 있다.

김태일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김태일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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