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년 8월15일 탈레반 병력들이 카불 함락 2주년을 맞아 아프가니스탄 카불 주재 미국 대사관 인근 거리에서 환호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러시아 정부가 3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부를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탈레반이 2021년 8월 카불을 점령하고 정권을 잡은 지 4년 만에 이를 합법적 정부로 인정한 첫 사례다.
러시아 외교부는 탈레반이 임명한 주러 아프간 대사가 제출한 신임장을 제출받았다면서, 이번 탈레반에 대한 공식 정부 인정이 “생산적인 양국의 협력 관계”를 발전시킬 것이라고 성명을 통해 밝혔다.
이어 에너지, 교통, 농업, 인프라 분야에서 경제 협력 가능성을 강조했으며 아프간이 지역 안보를 강화하고 테러 및 마약 밀매 위협에 맞서 싸우는 것을 지속해서 지원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번 발표는 아프간 탈레반 외교장관 아미르 칸 무타키와 주아프간 러시아 대사 드미트리 지르노프가 아프간 수도 카불에서 회담한 후 나왔다.
아프간 외교부 대변인 지아 아흐마드 타칼은 AFP에 “러시아는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토후국(탈레반이 정한 자국 국호)을 공식적으로 승인한 첫 번째 국가”라며 이번 조치가 “긍정적인 관계, 상호 존중, 건설적인 교류의 새로운 단계”라고 밝혔다.

2002년 8월13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여성인권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던 여성들이 탈레반 대원들의 경고 사격에 황급히 몸을 피하고 있다. 카불 | AFP연합뉴스
이에 대해 아프간 인권 운동가들은 이번 결정을 비판하고 나섰다.
마리암 솔라이만킬 전 아프간 국회의원은 “이 조치는 여아 교육을 금지하고, 공개 태형을 시행하며, 유엔 제재 테러리스트들을 숨겨주는 정권을 정당화하는 행위”라며 “전략적 이해관계가 인권과 국제법보다 항상 우선시된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뉴욕타임스는 탈레반이 여성의 6학년 이후 교육 금지, 의학 교육 금지 등 여성에게 억압적인 정책을 펼쳐 아프가니스탄을 세계 대부분의 국가들로부터 배척받는 ‘왕따 국가’로 만들었다고 평했다.
로이터 통신은 서방 외교관들을 인용, 탈레반이 여성 인권 문제에 대한 입장을 바꾸지 않는 한 국제 사회의 인정을 받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했다.
탈레반은 2021년 미군이 철수를 선언하자 약 20년 만에 아프간을 재장악했지만 지난 4년간 국제 사회는 탈레반을 아프간 정권으로 공식 인정하지 않아 왔다.
러시아는 탈레반이 집권한 이후 가장 먼저 카불에 대표부를 개설했으며 각종 국제 행사에 탈레반 대표단을 초청하는 등 외교 관계를 강화해 왔다.
지난 4월에는 러시아 대법원이 “테러리스트 단체 지정 목록에 포함된 탈레반 운동에 대한 금지를 중단한다”며 22년 만에 탈레반의 러시아 내 활동 금지 조치를 해제하라고 결정하기도 했다.
러시아 외에 중국과 아랍에미리트(UAE), 우즈베키스탄, 파키스탄 등이 탈레반이 임명한 대사를 받아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