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위탁 ‘우수’ 높은 평가에도 재정사업 ‘미흡’만 반영
‘선택적 인용’ 지적 속 “지원체계 붕괴하려는 의도” 비판
서울시가 위기 청소년을 돕는 십대여성건강센터 ‘나는봄’의 운영 종료를 알리면서 재정사업상 ‘미흡’이란 평가 결과만 근거로 대고, 높은 점수를 받은 민간위탁기관 평가는 반영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운영 종료 목표를 정해놓고 선택적으로 인용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서울시는 민간에 위탁해온 십대여성건강센터를 지난 4일 운영 종료했다. 이 센터는 성매매·성폭력·임신·탈가정 등으로 위기에 처한 10대 여성 청소년들의 건강 지원을 위한 기관이다. 위기 청소년들은 무료로 여성의학과·치과·정신건강의학과·한의학과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서울시는 지난달 24일 ‘지방자치단체 주요 재정사업 평가’에서 이 센터가 ‘미흡’ 평가를 받았다는 점을 사업 종료의 근거로 밝혔다. “센터의 전문 진료, 상담, 교육 분야 전문성이 낮다”는 평가도 있었다. 이 평가는 지난해 7~8월쯤 사업 부서에 전달됐다.
하지만 경향신문이 6일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서울시 민간위탁 종합성과 평가 보고서’를 보면 이 센터는 총점 79.93점으로 대상 기관 61곳의 평균 78.52점보다 높은 평가를 받았다. 보고서는 서울시가 한국산업관계연구원에 맡겨 지난해 9월 나왔다. 이 센터는 75점 미만을 받은 기관이 대상인 ‘위탁사업 재공모 절차’ 대상에도 들지 않았다.
이 보고서에는 주요 재정사업 평가와 배치되는 내용도 많았다. “전문성이 낮다”는 평가와는 달리 “사회복지사, 성매매 방지 상담원, 여성의학과 전문의 등으로 구성돼 위탁 사무와 연관된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고 했다.
특히 ‘사업 성과’의 경우 총 45점 중 40점으로 높은 점수를 받았다. 보고서는 센터가 서울시·청소년쉼터 등 관련 기관과 연계해 지역사회 안전망을 확대했다고 평가했다. 성착취 피해 10대 여성을 위해 개인·가족 상담으로 재발 방지 노력을 하고 있다는 점도 성과로 평가됐다. 센터가 최근 3년간 약 5억200만원의 후원을 받아 서울시 예산을 절약한 점도 긍정적으로 언급됐다.
주요 재정사업 평가는 지방재정법에 따라 사업 성과를 평가해 재정 운용에 반영하는 제도다. 다음 예산을 짜기 전, 예산 증감의 근거로 사용된다. 김상철 나라살림연구소 정책위원은 “재정사업 평가의 목적은 개별 위탁사업 종료를 결정하기 위함이 아니다”라며 “민간위탁 성과 평가에서 ‘재공모 기준’을 넘긴 센터의 운영을 임의적 근거로 종료하는 건 부적절하다”고 했다. 용 의원은 “지원체계를 무너뜨리려는 의도가 아니고서야 납득할 수 없는 행정”이라며 “서울시는 지원 공백이 장기화되지 않도록 운영 종료를 철회하고, 센터 종사자를 비롯한 전문가들과 지원체계 강화를 위한 논의에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서울시 관계자는 “주요 재정사업 평가와 민간위탁 보고서를 종합 고려해 판단한 것”이라며 “전문가 회의를 통해 청소년들이 24시간 의료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두꺼운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수렴해 더 좋은 신규 센터를 만들기 위해 위탁을 종료하는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