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로 동료의 죽음을 목격한 노동자들은 극심한 트라우마를 겪는다. 태안화력 고 김충현의 동료들도 그렇다. 고인이 사망한 ‘공작설비동’ 건물 2층에는 한전KPS 2차 하청업체의 사무실이 있다. 동료들은 일하러 나가는 길에, 일을 마치고 들어오는 길에 기계에 끼여 죽음에 이른 동료의 시신을 그대로 목격했다. 관리자들은 ‘보지 말고 사무실로 들어가라’고 했지만 사고 현장에는 어떤 가림막도 설치되지 않았다.
동료의 마지막을 본 뒤, 사무실로 들어간 동료들의 시간이 아득해졌다. 시신이 수습되고 병원으로 이송되기까지 세 시간. 이 세 시간이 각자의 몸과 정신에 어떤 상처를 남겨 놓았는지 알 길이 없다.
고 김충현의 동료들은 3주째 트라우마 상담 치료 중이다. “처음에는 잠도 못 잤어요. 자꾸 생각나고… 그래도 이젠 많이 좋아졌어요”라고 이야기해주는 동료가 있지만, 그도 나도 ‘많이 좋아졌다’는 것이 잠정적임을, 언제라도 다시 그를 사고 현장으로 데려다 놓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사망사고 직후 대책위원회는 고용노동부, 한전KPS와 동료들의 트라우마 치료 기간을 8월 말까지 보장하는 것을 우선적으로 합의했다. 그런데 지난 7월3일, 사측은 치료 중인 노동자들에게 일방적인 업무 복귀 명령을 내렸다.
기가 막혔다. 6년 전 김용균 노동자의 동료들도 트라우마 치료 도중 사측의 강제 종료, 업무 복귀 지침이 떨어져 노동부에 항의하는 소동이 있고 난 뒤에 겨우 트라우마 치료를 끝까지 받을 수 있었다. 이때 경험 때문에 노동자들은 김용균 특조위에 전체 발전사 하청 노동자까지 트라우마 치료를 확대하는 권고안을 내도록 요청했고, 각 발전사들은 ‘사고 후 3일 이내 당사자에게 상담을 권고하고 상담을 보장하기 위해 하청업체에 관련 공문을 발송하도록 하는’ 제도를 마련했다. 그러나 이 제도는 김충현 사망사고에서 작동하지 않았다. 노동부는 한전KPS의 일방적인 업무 복귀 명령에 대해 적극적인 행정조치를 하는 데 주저했다. 할 수 없이 대책위와 김충현의 동료들은 주말 내내 노동부 서산출장소를 점거했다. 당장 월요일부터 업무에 복귀하라는 지침을 철회시키지 않으면 동료들의 건강과 작업장 위험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가까스로 노동부를 설득해 한전KPS의 업무 복귀 지침을 철회시켰지만, 답답한 마음이 이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노동부의 ‘직업 트라우마 관리 매뉴얼’에 따르면 트라우마는 2차 피해이자 두 번째 산업재해이다. 산업재해를 겪은 노동자의 25.5%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경험하고 있다. 매뉴얼에는 사망사고 후 트라우마 관리를 하지 않고 작업에 투입된 사업장에서 두 번째 사망사고가 발생한 사례가 나온다. 트라우마 치료는 노동자 개인의 심리적 치유의 문제를 넘어 작업장 안전을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그럼에도 노동부는 여전히 적극적인 행정력을 발휘하지 않는다. 지긋지긋한 ‘기계적 중립’ 행정 탓에 오늘도 김충현의 동료들은 울분을 터트리며 점거 농성을 하게 됐다. 이 과정이 트라우마를 더 강화하게 될지는 알 수 없다. 단지 기업은커녕 정부조차 자신들의 고통에 적극적인 지지자가 아니란 것을 알게 됐을 뿐이다.

전주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