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맬갑시’란 말. ‘괜히, 아무런 이유 없이’란 뜻. 특별하게 이유랄 것도 없이 그냥 그렇게 맬갑시 전화를 넣고, 맬갑시 만나서 맬갑시 앉아 있다가 맬갑시 혼자 웃고 울다가 맬갑시 집으로 돌아왔다. 맬갑시 사는 것도 아닌데 왜 이럴까. 좀 진하고 무거운 말로 ‘무담시’란 말도 쓴다. 이유 없이 누가 괴롭히면 ‘무담시’ 그런다며 징징대도 괜찮은 게, 무담시 그러면 상대가 지나친 거다. 비하여 맬갑시는 훨씬 가볍고 능청스러워.
오래된 친구가 맬갑시 서울이 싫다면서 놀러 가도 되냐길래 그러라 했다. 폭서 더위에 서울에 며칠이라도 있어 보면 그 마음을 얼추 헤아리고도 남지. 진작 가방을 싸고도 남았을 시간인데 출발했다는 말이 없어 전화했더니 싸던 가방을 다시 풀었다고 한다. 자기 아픔만 생각하고 남 아픔을 헤아리지 못했다며 미안하대. 아픔이란 스며들고 전이가 돼. 아픈 이야길 계속 듣다 보면 맬갑시 나도 덩달아 아프다. 암만 허물없는 사이라도 밝고 건강할 때 봐야지 안 그러면 독이 된다.
여행 가방에 얽힌 노래, 태진아가 불러 유명해진 ‘선희의 가방’이라고 있지. “선희야 가방을 왜 쌌니. 선희야 서울이 싫더냐. 그리움이 나를 불러왔는데 너의 모습 보이지 않아. 누가 너를 이곳에서 떠나가게 그냥 두었나. 내가 자주 널 보러 못 간 게 떠나간 이유가 되었냐. 선희야 선희야 어디서 가방을 또 열어 사랑을 담을래…” 떠나간 이유랄 것도 없이, 맬갑시 가방을 쌌는갑다.
맬갑시 소도둑이 된 사람 이야길 알지. 길을 가다 줄이 보여서 줄을 잡고 집에 왔을 뿐인데 줄 끝에 소가 묶여 있었대. 소 주인이 물어물어 쫓아왔지. “가만히 잘 있는 소를 왜 몰래 끌고 갔소?” “맬갑시 줄 끝에 소가 있었을 뿐이오. 나도 집에 와서야 알고, 깜짝 놀랐단 말이요.” 진짜 몰랐을까?
여름밤은 깊고, 외양간에서 소들이 운다. 맬갑시 누가 생각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