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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멀리 사색할 의무

입력 2025.07.09 20:53

지난달 개관한 민주화운동기념관에 다녀왔다. 무거운 마음으로 전시관을 나왔을 때 옛 남영동 대공분실 앞에서 사람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었다. 민주화 운동가들을 고문하던 공간, 취조를 위해 설계된 건물을 배경으로.

13년 전 어느 볕 좋은 날, 가까이 지내던 대학 선배와 남영동 대공분실까지 걸어간 적이 있다. 당시 우리는 사회 토론 동아리에 속해 있었고 그 주에 논의했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현장을 확인하고 싶었다.

선배는 그곳을 유명한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했으며 5층 고문실의 창문은 바깥에서는 안을 볼 수 없고 안에서는 밖으로 뛰어내리지 못하도록 작게 만들어졌다고 했다. 5층으로만 통하는 나선형 계단은 눈이 가려진 채 끌려가는 이들이 방향 감각을 잃고 공포감을 느끼게 했다고도 설명했다. 정확한 층수를 알지 못하게 해서 이후에 증언하기 어렵게 하려는 의도도 있었으리라 추측했다. 조사실 벽면에는 목제 타공판을 사용해 옆방의 비명을 고스란히 듣게 했다고 한다. 선배의 설명을 들으며 사람이 사람을 괴롭히기 위해 치밀하게 계산하고 치열하게 고민했다는 데 참담함을 느꼈다.

우리는 조사실을 그대로 보존해둔 5층 복도로 들어섰다. 물고문에 쓰인 커다란 욕조가 좁은 방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변기와 침대가 문으로 구분되지도 않은 채 덩그러니 놓여 있는 생경한 구조에 메스꺼움을 느꼈다. 실제로 고문받았던 이들은 대소변 역시 수사관들 앞에서 해결해야 했다고 진술했다. 고문실 한가운데 놓인 박종철 열사의 영정을 응시하며 머리로는 아픈 역사를 제대로 마주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잘되지 않았다. 밀려드는 폐소 공포에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었다.

짐작하는 것과 직면하는 것의 차이를 절감했다. 현장을 직접 목격하고 기억해야 할 일을 되새기겠다는 명분까지 다 잊어버렸다. 숙연해져 돌아오는 길에 “알면 알수록, 사색하면 할수록 우울하고 힘들어져. 그런데 우리는 왜 그런 고통을 자처해야 하지?”라고 선배에게 물었다. 스무 살이 할 수 있는 가장 복잡하고 어려운 고민이었던가. 모르겠다. 당시에는 절박한 물음이었다. 선배는 어떤 효과나 보상이 있어서 하는 게 아니라 해야 해서 하는 거라고 했다. “사색은 의무야.”

성해나의 소설 <구의 집: 갈월동 98번지>는 고문실을 설계하도록 요청받은 건축가들의 작업 과정을 그린 소설로, 제목에 드러나듯 남영동 대공분실을 모티브로 삼고 있다. 합리성을 중시하는 건축학도 ‘구보승’은 스승 ‘여재화’가 작업한 취조실의 도면에서 창문을 지운다. 빛이 들면 희망이 생겨 신념이 굳건해질 수 있으므로 공간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게 그 이유다. 그러나 곧 생각을 바꿔 설계도에 다시 폭이 좁은 창을 낸다. 인간이란 희망이 완전히 소거된 때보다 그것이 멀리에 미미하게나마 존재할 때 더욱 절망하게 되리란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구보승은 건축가로서 주어진 일을 착실히 하면서 고문받게 될 인간에 대해 상상하고 숙고한다. “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인간”이라는 스승의 말을 기이한 방향으로 왜곡해 따른다. 그는 맡은 일을 잘 해내기 위해 열심히 고민하지만, 무엇을 위한 열심인지는 점검하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공포감을 주는 고문실을 설계할 수 있을지에 골몰할 뿐, 실제로 고통당할 이들의 삶이 얼마나 망가질지, 인간의 존엄을 빼앗는 일을 효율적으로 하게 만드는 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자기가 하는 일이 궁극적으로 향하는 곳은 외면한 채, 당장 주어진 목표에만 근시안적으로 몰두하는 것이다.

우리의 행위가 가닿을 끝의 끝까지 남김없이 사유해야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간을 괴롭게 하는 이들 또한 사색한다면, 인간을 지키려는 자들은 더 치열하게, 보다 끈질기게 사색해야만 한다. 선택이 아니라 의무다.

성현아 문학평론가

성현아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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