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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요약

황정은의 에세이 <작은 일기>는 지난해 12월3일 발표된 계엄령, 그와 동시에 잠도 이루지 못하고 거리로 쏟아진 사람들의 분노와 외침 속에서 시작된다.

2021년 나온 <일기> 이후 4년 만에 선보이는 이번 에세이는 상상치도 못한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 사태 이후를 배경으로 삼는다.

탄핵 인용에 이르기까지 격랑의 시간 속에서 작가는 매일 삶을 기록하며 광장과 집 안, 거리와 책상 앞을 쉼 없이 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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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 = 경향신문&NAVER MEDIA A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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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와 무력감…그날 밤 우린 같은 날에 베였다

입력 2025.07.10 21:02

수정 2025.07.10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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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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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계엄 이후 탄핵까지…격랑의 시간 견딘 작가의 ‘계엄 일기’

‘답답한 시간들’ 속 삶을 나아가게 하는 건 작은 연대·다정·존중

소설가 황정은은 <작은 일기>에서 “우리가 각자의 자리에서 어떤 정체성으로 어떤 부침을 겪고 있든 불법계엄이라는 국가 폭력에 관통당한 경험으로, 그 고통으로 이미 연결되어 있다는 감을 잃지 않는다면, 잊지 않는다면, 괜찮지 않을까”라고 말한다. 창비 제공

소설가 황정은은 <작은 일기>에서 “우리가 각자의 자리에서 어떤 정체성으로 어떤 부침을 겪고 있든 불법계엄이라는 국가 폭력에 관통당한 경험으로, 그 고통으로 이미 연결되어 있다는 감을 잃지 않는다면, 잊지 않는다면, 괜찮지 않을까”라고 말한다. 창비 제공

세면대에 물이 새서 수리 예약을 하고 책을 주문하는 김에 귤을 샀다는, 평온했던 그날 저녁 일기에는 묵직한 쇳덩이를 떨구듯 짧은 메모가 더해져 있다. “오후 열시 이십삼분 계엄.”

황정은의 에세이 <작은 일기>는 지난해 12월3일 발표된 계엄령, 그와 동시에 잠도 이루지 못하고 거리로 쏟아진 사람들의 분노와 외침 속에서 시작된다. 2021년 나온 <일기> 이후 4년 만에 선보이는 이번 에세이는 상상치도 못한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 사태 이후를 배경으로 삼는다. 탄핵 인용에 이르기까지 격랑의 시간 속에서 작가는 매일 삶을 기록하며 광장과 집 안, 거리와 책상 앞을 쉼 없이 오갔다. 책은 이 시간을 견뎌낸 생활의 기록이면서 한국 사회가 경험한 충격적 사건의 사회적 기록이다. 시대의 아픔을 예민하게 읽어내고 이를 단단하고 아름답게 써온 작가가 써내려간 ‘계엄 일기’라고 할 만하다.

타인의 일상을 들여다본다는 호기심을 가지고 펼친 행간에는 분노와 피로, 무력감들이 배어있다. 계엄 이후 많은 시민들이 경험한 감각이기도 하다. 탄핵 이후에도 체포되지 않는 권력자와, 이를 지지하거나 방조하는 세력들 앞에서 삶의 감각은 날로 무뎌진다.

[책과 삶] 분노와 무력감…그날 밤 우린 같은 날에 베였다

작은 일기
황정은 지음
창비 | 192쪽 | 1만4000원

“‘제가 자영업하고 있는데/ 계엄 났을 때/ 너무 무기력하더라고/ 그래서 (일)하다가 쉬고 나왔어요’ 이 말과 얼굴이 생각나 걷다가 울었다. 내게도 그 얼굴이 있다.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탄핵 집회에서 물을 나눠주며 말하다가 울음이 터진 그처럼 내게도, 불시에 그 밤이 떠오르면 생생하게 그렇게 갈라지는 얼굴이. 그와 내가 같은 날刀에 베였다. 우리뿐일까.”

1월 중순 새벽 작가는 ‘물 떨어지는 소리’에 잠에서 깬다. 공수처가 윤석열을 내란 혐의로 체포했지만, 서부지법 난동 사태가 벌어진다. 헌법재판소에서 탄핵 심리가 이어지지만, 윤석열의 구속이 취소된다. 식물을 돌보고 좋은 책들을 읽으며 평온을 찾아보려 하지만, 마음의 혼란은 가라앉지 않는다.

“내란 이후로 엘리트 카르텔과 부패의 면면을 이렇게 속속 확인하고 보니 이 사회의 ‘공부’가 틀렸다는 걸 새삼, 정말로 뼈가 아프게 알겠다. 이제 이 사회에서 어떤 이가 공부를 잘하고 ‘좋은’ 대학을 나왔다는 건, 그를 양육한 보호자들에게 경제적, 문화적, 인적 자원이 충분했다는 것 말고, 무엇을 증명할 수 있을까.”

이러한 시간을 견디게 하는 것은 이웃과의 작은 연대, 광장에서 마주한 다정한 순간들이다. “‘한강진 대첩’과 ‘키세스단’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아침 뉴스를 통해 그들을 보았다. 서울 지역에 대설주의보가 내린 날. 사람들 몸을 덮은 은박 담요 위로 눈이 쌓여 있었다. 전날처럼 또 누군가는 남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많은 이들이 그런 모습으로 밤을 보낼 줄은 몰랐다. 그렇게 다시 서로를 돕고 살피며 밤을 보낼 줄은.”

하지만 광장은 안전한 연대의 공간만은 아니며, 탄핵이라는 ‘대의’를 이유로 소수가 침묵을 강요받기도 했다. 작가는 ‘정상성’의 폭력과, 그 안에서 느끼는 불편을 외면하지 않는다. “분노한, ‘우리’로 단일하다고 간주하는 집단 안에서 느끼는 불편함과 소외감. 소수를 향한 다수의 불편. 너무 많은 사람들 틈에서 강화되는 정상성 요구, 단일한 집단이 되려는 욕구. … 보수적인 정상성을 추구하고자 할 때 단지 그 자리에 섞여 있다는 것만으로도 안전하지 않다고 느끼고, 닥치라는 분노의 대상이 되는 것을 쓸 것.” 여성 청년, 성소수자, 농민, 장애인 등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것은 ‘광장 이후’ 한국 사회 과제이기도 하다.

황정은은 용산 참사, 세월호 참사, 박근혜 탄핵에 이르기까지 삶을 뒤흔든 사건들에 대해 써내려왔다. 답답한 시간들 속에서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존중과 다정을, 조용한 애정을 알아보고 눈치채는 마음”을 떠올린 그는 끝내 “내가 이 세계를 깊이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노동자, 농민,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온갖 시민, 우리가 각자의 자리에서 어떤 정체성으로 어떤 부침을 겪고 있든 불법 계엄이라는 국가 폭력에 관통당한 경험으로, 그 고통으로 이미 연결되어 있다는 감을 잃지 않는다면, 잊지 않는다면, 괜찮지 않을까. … 앞으로 살아갈 시간 안에서 수없이 서로를 알아보고 그도 곁에 있다는 것을 눈치채면서, 살아갈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조용하지만 단단한 기록을 맺는다. “이제 산책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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