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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이 되려는 예술

입력 2025.07.16 21:09

수정 2025.07.16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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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 뒤, 미술대학에 진학하고자 결심했다. 어느 날 밥상머리에서 그 이야기를 어렵게 꺼내자 아버지는 숟가락을 내던지며 화를 내셨다. 굶어 죽을 환쟁이가 되려고 한다면서 절대 허락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분노와 폭력 앞에서 나는 기가 죽었다. 당시 어른들은 미술을 전공하면 실업자가 되거나 가난하게 살 것이라는 확신과 믿음이 있었다.

지금도 별반 다르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이들이 미대에 가려 하면 순수미술보다는 디자인 전공을 택하거나 실용적인 전공이라 여겨지는 것을 찾는다. 대학들 역시 산업과 기술, 미술을 접목한 그럴듯한 제목으로 과의 명칭을 바꾸면서 모종의 세탁을 한다. ‘첨단’으로 보이고 미래 직업이 될 것 같은, 테크놀로지·영상·게임·디자인 등이 뒤섞인 이름의 전공들이 난립하고 있다.

모든 것이 실용주의와 산업주의, 성과주의, 취업 우선주의에 따라 결정되고 있다. 그러니 취업이 안 된다고 낙인이 찍힌 순수미술 전공은 당연히 사라져야 하는 것이 이 시대의 대세다. 대학의 구조조정 우선순위도 미술대학이다. 그렇게 해서 회화과, 조소과 등 전통적인 학과명은 사라지는 추세이며 예술가가 되겠다는 학생들을 찾기도 쉽지 않게 됐다.

입시 준비 때부터 취업 걱정과 불안에 시달린 학생들은 대학에 진학해서도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불안을 미리 앞당겨 살아버리면서 초조해한다. 이들에게 순수한 전공에의 몰입과 향유, 대학 생활의 낭만과 자유는 창백하게 사라졌다.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지, 그리고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과 성찰이 사라진 자리에 그저 취업이라는 목표만이 강제되고 있다. 동일한 생의 욕망과 획일적인 목표가 압도하는 상황에서 어떤 주체성과 개별성이 가능할까? 그곳에서 독창적이고 빼어난 작품이 과연 나올 수 있을까?

한 나라의 문화예술의 발전이란 결국 무수한 개인성으로 빛나는 예술인들의 등장과 이들이 지닌 세계관에 기반해 해석된 삶과 세계의 출현에 기인한다. 집단적인 삶의 욕망에 동일하게 얽매여 있는 자들은 결코 예술가가 될 수 없다. 예술가란 길들여지지 않으려는 자들이고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전적으로 호응하면서 단독자로 살려는 이들이다. 여기서 예술작품이 밀려 나온다. 그러니 뛰어난 예술은 우선 이 사회가 요구하는 획일적인 생의 논리와 욕망에서 빠져나오는 이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오늘날 모든 것은 오로지 유용성에 기반한다. 예술 역시 유용한 그 무엇이 되어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치 있는 일은 그것이 얼마나 이윤을 극대화하고 있는지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예술은 사라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세계는 오로지 유용성에 의해서만 작동되진 않는다.

예술은 쓸모 있고 자본이 되는 것만이 우선인 사회에 무용성의 미덕을 안겨준다. 역설적으로 무모하고 무용하고 목적 없는 노동을 통해 성과주의와 산업주의로만 치닫는 사회, 삶에 구멍을 내는 것이다. 뛰어난 그림과 문학, 음악, 영화의 역할을 생각해보라. 그것들은 산업이 되기 위해 노력해 만든 것이 아니라, 진정성을 갖고 영혼을 울리고 정신을 매질해 엄청난 충격을 주고 감동을 주었기에 사후에 산업이 될 수 있었다. 그러니 산업을 목적으로 내걸거나 경제적 가치를 우선해 예술에 접근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일 수 있다. 그에 앞서 아이들이 취업 공포와 미래 불안에서 벗어나게 하는 일이 우선돼야 한다. 각자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도록 격려해줘야 한다.

박영택 미술평론가

박영택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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